美·獨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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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79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의회는 각종 법률을 영어와 독일어로 표기하자는 독일계 주민들의 청원을 42대 41로 기각했다.

이게 조금 부풀려져 '뮐렌버그 전설'이 됐다. 당시 미국의 언어를 결정하기 위한 의회 투표에서 영어와 독일어가 비기자 의장이던 프레데릭 뮐렌버그가 영어 쪽에 캐스팅 보트를 던졌다는 것이다. 이미 1776년 투표에서 한 표 차이로 영어가 결정됐다는 설도 있다. 그만큼 건국 초기부터 미국에 독일계 주민이 많았다는 얘기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당시 만약 미국이 독일어를 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같은 말을 쓰는 미국과 독일이 훗날 그토록 처절한 전쟁을 치렀을까. 무엇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강한 톤의 독일어로 "후세인을 몰아내자"고 외치는 모습은 상상이 잘 안된다.

지난 세기 미국과 독일처럼 애증이 교차했던 나라도 없다. 두차례에 걸쳐 총부리를 맞대고 싸웠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둘도 없는 동맹이 됐다. 미국의 마셜 플랜으로 독일은 경제부흥을 이룩했고, 통일까지 달성했다. 특히 소련이 서베를린 주민을 고사시키기 위해 1948~49년 베를린을 봉쇄하자 미국은 '건포도 폭격기'로 대대적인 생필품 공수작전을 전개, 이들을 구해냈다. 61년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건설하자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63년 서베를린을 방문,"이히 빈 아인 베를리너(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라는 말로 연대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유로 냉전시대 양국 관계는 형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90년 독일 통일 후 사정이 변했다. 독일이 '경제 거인, 정치 난쟁이'를 탈피하겠다며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그간 양국 사이엔 별 외교 마찰이 없었다.

그러나 이게 요즘 들어 깨지고 있다. 소리까지 요란하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 입장을 거듭 천명하면서 전통적 양국 관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최근 독일 주재 대사를 총리실에 보내 설득하려 했지만 독일 측으로부터 '부시=체자르(시저)'라는 비아냥만 들었다.

총선을 겨냥한 슈뢰더의 이같은 모험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반전 여론을 타고 계속 야당에 밀리던 지지율을 역전시켰고, 국제적으로도 미국의 징고이스트(주전파)에 맞서 '노'라고 말하는 유일한 동맹국 지도자로 뜨고 있다. 9·11 1주년과 독일 총선이 시기적으로 맞물려 빚어낸 전후 최초의 이 미-독간 맞대결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보자.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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