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자" 日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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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일본 경제의 거품을 일으키고 꺼뜨린 결정적 요인은 바로 금리였다.

1985년 고평가된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떨어뜨린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정부는 '엔고(円高)불황'을 우려했다. 엔화 가치가 치솟으며 수출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금리를 급격히 낮추기 시작했다. 86년 1월 5%였던 재할인금리를 1년여 만인 87년 2월 절반인 2.5%로 인하했다.

금리가 갑자기 낮아지자 시중에는 자금이 넘쳤다. 하지만 기업들은 수입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는 데 힘입어 엔고 상황을 극복해 자금 수요가 많지 않았다. 은행들은 넘치는 자금을 부동산 대출로 돌리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주택대출 전문 자회사를 앞다퉈 세웠고 개인에게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었다. 은행간 경쟁은 갈수록 뜨거워졌고, 그 결과 담보물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거나 시세보다 많은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서너달 지나면 부동산 값이 뛰어 담보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저금리로 금융비용 부담이 줄자 여유가 생긴 기업들도 부동산 사재기에 몰두했다. 도심 자투리 땅에 이어 지방 땅사냥에 나섰고, 거품이 최고조였던 89년에는 소니가 미국 컬럼비아 영화사를,미쓰비시는 록펠러 빌딩을 사들였다.

거품이 한창 부풀어 오른 86~88년 인상 시기를 놓친 일본 정부는 거품이 부풀대로 부푼 89~90년에야 허겁지겁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89년 5월 2.5%였던 재할인금리를 15개월 만에 6%로 끌어올렸다.

가파르게 금리를 올리면서 부동산 담보대출을 규제하자 거품이 급히 꺼지면서 주가와 땅값이 동반 폭락했다. 그 후 일본은 90년부터 13년째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디플레이션과 부실채권 증가로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 속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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