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자료는 국민의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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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적자금 국정조사는 결국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고 말 것인가. 시일이 촉박한 데다 정부 측의 자료제출 비협조까지 겹쳐 시작단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3일 활동을 시작한 국회 공적자금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의 자료 제출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는 기관은 감사원과 금융감독위원회·예금보험공사·공적자금위원회 등이다. 이들은 공적자금과 관련된 1백여개 기관에 대한 세부감사 내역과 은행별 공적자금 투입 내역·투입기관의 경영상태 및 투입효과 등의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해당기관은 거부 사유를 실명제법 위반 또는 도를 넘는 자료요청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공적자금 국정조사를 둘러싼 이 같은 사태진전에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그동안 외환위기 수습과정에서 1백56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으며, 이 가운데 69조원은 건질 수 없다고 밝혔다. 구멍난 공적자금은 앞으로 25년간 세금을 거둬 메우자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공적자금을 댄 것도, 빚을 갚는 것도 결국 국민의 몫이다. 국민은 공적자금 투입의 불가피성이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 건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분명히 확인하고 싶어 한다. 공적자금 투입 이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국정조사에 기대를 거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정당마다 대선이 임박한 시기에 국정조사를 하는 정치적 의도가 따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의도를 이유로 정부가 자료 제출을 기피할 수는 없다. 정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에 앞서 금융실명제법 등 실정법에 어긋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국회의 요구에 최대한 협조하는 자세부터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특위의 실질적인 조사기간은 추석연휴와 10월 7일부터로 예정된 청문회 일정 등을 제외하면 한달 남짓일 뿐이다. 기초자료를 가지고 승강이를 벌일 여유가 없다.공적자금 관련자료는 담당 공무원이나 기관의 소유가 아니다. 국민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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