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투자가 우아하게 만났다 '畵테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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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6면

보너스가 나오거나 적금을 탄 달,여윳돈이 생겼다. 무얼 할까. 정기예금에 드는 사람,주식에 투자하는 사람, 여행을 가는 사람…. 주부 윤해경(42·서울 청담동)씨는 그림을 산다.

그림을 산다니 '대단한 부유층인가 보다'라고 치부할 법하다. 물론 지금이야 생활이 넉넉한 편이지만 은행원인 남편이 신입 시절 1백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을 때부터 그림을 사기 시작했다니 '그림=큰 돈'의 공식이 반드시 통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림을 좋아해서 많이 보러 다니다 보니 집에 걸어두고 싶은 게 눈에 띄더군요. 그럼 어떡하든 돈을 모아 사러갔죠. 요즘도 일주일에 한번은 인사동에 나가 화랑가를 돌아봅니다."

그렇게 좋아서 산 그림들은 종종 생활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 몇년전 급하게 돈이 필요해 3년 가량 갖고 있던 최영림씨의 작품 '여인'을 팔았다. 80만원쯤 주고샀던 그림을 3백만원에 팔았으니 굳이 수익률을 따지자면 2백75%나 된다. 물론 돈을 벌자는 게 주목적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그림을 샀다가 손해보고 판 적은 없다고 한다. 운도 있었겠지만 굳이 비결을 꼽자면 오랫동안 다리품을 들여 길러진 안목이라고나 할까.

"투자가치가 있다는 게 그림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몇년이고 집안을 아름답게 장식하니 좋고, 그러다 팔아 돈을 벌 수도 있고…."

윤씨는 요즘 고가구에도 눈을 돌렸다. 얼마전 경매전문회사인 서울옥션의 경매에 참여해 조선시대 부잣집에서 썼을 법한 돈궤를 1백50만원에 낙찰받았다. 돈궤 위로는 장식품을 진열하고, 안쪽엔 철 지난 옷들을 가득 담아 장식장 겸 수납장으로 활용한다.

그림이나 고가구에 관심있는 사람이 비단 윤씨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값이 너무 비쌀 것 같아서"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할지 몰라서" "샀다가 손해를 볼까봐" 등등 갖가지 이유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게 만든다.

미술 문외한들의 이런 두려움에 대해 서울옥션의 김순응 대표는 "미술품은 주식·부동산 등에 비해 가장 안정적인 투자대상"이라며 "단기간에 큰 돈을 벌겠다는 욕심없이 10년쯤 묻어둘 수 있는 여윳돈이 있다면 초보자들도 얼마든지 시도할 만한 분야"라고 권유한다.

미국·유럽 등 서구의 경우 최근 금융시장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오히려 자금이 미술품 시장쪽으로 몰려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 지난 3년간 미국에서 미술품 투자 수익률은 연평균 54%를 넘어섰을 정도다.

한국 역시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줄이 요즘 미술품 시장에 흘러들기 시작해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침체됐던 시장이 슬슬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단다. 말하자면 투자 적기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어디서 어떻게 그림을 사야 하나. 전시회가 열리는 화랑을 기웃거리다 맘에 드는 그림을 고르고 가격을 흥정해 사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다. 하지만 그게 백화점에서 밥솥을 사는 것과는 차원이 좀 다른 일이라 맘에 걸린다. 내가 고른 그림이 과연 좋은 것인지, 화랑에서 부른 값이 적절한지, 속아 사는 것은 아닌지…. 초보자라면 걱정이 끝도 없이 이어질 법하다.

최근 활성화하고 있는 서울옥션 등 경매회사들의 경매에 참여한다면 이런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다. 우선 경매 현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가격이 투명하게 결정되니 바가지를 쓸 염려가 없다. 또 경매에 내놓는 작품은 전문가들의 감정을 거친 것이라 미술품 시장에 종종 나도는 가짜를 만날 위험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혹 가짜를 사는 사고가 발생해도 경매회사측에서 보상을 해주는 시스템도 있다.

"경매는 미술품을 시중가보다 싸게 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경매회사 측에 내는 수수료(대부분 낙찰가의 11%)를 감안해도 20~30%쯤 싸게 살 수 있다고들 하지요." 김대표의 말이다.

경매에 참여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경매일 이전에 경매회사의 사이트나 전시장을 찾아 꼼꼼하게 살펴본 뒤 마음에 드는 작품을 점찍는다. 경매일에 현장에 도착해선 응찰 신청서를 작성한 뒤 패들(응찰때 사용하는 팻말)을 받아 참여하면 된다.

생활용품을 경매로 사는 인터넷 사이트 등에 익숙한 젊은층의 경우 이런 경매 방식에 대한 호응도가 꽤 높은 편이다.

물론 남들이 많이 한다고 당장 무턱대고 경매장에서 그림을 산다면 증시에서 '묻지마 투자'를 하는 것과 다름없이 무모한 일이다. 미술품 투자에 관심이 있다면 우선 틈나는 대로 구경부터 다녀보자. 사고 안사고는 그 다음 문제다.

◇경매회사 어떤 곳이 있나=▶서울옥션(www.seoulauction.com, 02-395-0330)▶명품옥션(www.mpauction.co.kr, 02-733-7312), 한국미경(www.ikaa.co.kr, 02-737-6270), 코리아아트(www.koart21.com, 051-740-5801)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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