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지역 票의식 선심경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수해 특별재해지역 선정과 관련, 정치권이 대상지역 지정을 크게 늘려줄 것을 정부 측에 요청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4일 수해복구에 대해 똑같은 목소리를 냈다. 특별재해지역 선정에 차별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에선 "피해면적에 따라 재해지역을 넣고 뺀다면 주민들의 상실감이 클 것" "김천이 제외될 것으로 보도돼 현지 불만이 극심하다" "특별재해지역에서 빠지면 무주에서는 집단민원이 일어날 수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민주당 의원들도 "당 차원에서 조사, 대상에서 빠진 지역은 당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단전으로 가두리 양식장의 고기가 다 죽었다는데 이런 간접피해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이상배(李相培)정책위의장과 이규택(李揆澤)총무 등은 이날 이근식(李根植)행자부장관을 방문, "규정에 얽매이지 말고 수해 피해가 심한 지역은 모두 특별재해지역으로 지정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똑같이 피해를 보고도 행정구획상의 차이로 구제대상에서 빠질 경우 형평성 논란과 수재민들의 불만이 발생할 게 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현실을 도외시한 요구"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심지어 "전형적인 정치권의 '선심쓰기'"라는 얘기도 들린다. 정치권의 요구대로 특별재해지역을 늘리는 데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추가 소요 예산은 모두 국민부담이다. 정부가 태풍·가뭄 등 자연재해 복구를 위해 매년 편성하는 재해예비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행자부 한 고위 관계자는 "올해분 예비비 1조8천여억원은 지난 8월 초 호우로 이미 고갈된 상황이어서 특별재해지역을 선정할 경우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관계부처에서는 추경 규모가 크게 늘어나면 재원마련이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이어 "자연재해에 의한 손해는 보험 등을 통해 피해당사자들이 대비·구제하는 것이 국제적인 통례"라며 "한국이 유일하게 정부에서 자연재해 피해를 보상해 주는데 이에 대한 재검토도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