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을엔 '황혼'이 아름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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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8면

"시간 맞춰 균형 잡힌 식사 하고, 취미생활 하고, 친구 많고-. 여기 와서 몸이 더 좋아졌어." 지난달 28일 오후 7시30분, 기세훈(88) 변호사는 영양사가 칼로리를 따져 만든 닭조림과 버섯무침 등으로 저녁식사 한 그릇을 거뜬히 비웠다. 그는 식사 시간 앞뒤로 빠짐없이 혈압·혈당 등 건강 상태를 체크한다. 1970년대 서울고등법원장을 지낸 奇변호사는 요즘도 정확히 매일 오전 10시면 합동법률사무소에 나가 오후 4시쯤 퇴근한다. 돌아와선 헬스기구 운동과 걷기로 건강을 다진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당당한 현역인 그의 주거지는 실버타운인 서울시니어스타워다. 4년째 이곳에 사는 그는 만나는 친구들에게 "더 늙고 병들기 전에 빨리 오라"고 손을 잡아끌 정도로 실버타운 예찬론자가 됐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노인들의 건강상태가 좋아지면서 노인 전용 주거공간의 하나인 실버타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자녀가 늙은 부모를 모시고 사는 전통적 가족제도가 무너지고 있어 우리도 선진국처럼 노인들이 실버타운에서 노후를 보내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게 奇변호사의 진단.

실버타운은 단순 주거시설이 아니다. 건강하고 활기차게 노후를 보내려면 건강관리를 위한 의료 시스템은 필수다. 실버타운은 한마디로 "노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주거공간"(이계현 서울시니어스타워 기획실장)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만만찮은 비용이 든다. 최근 실버타운 건설이 늘긴 했지만 전국적으로 숫자가 많지도 않다. 자신에게 적합한 실버타운을 찾고, 그에 맞춰 필요한 경비를 준비하는 것도 현명한 노후대책이다.

◇의료시스템=서울시니어스타워와 삼성 노블카운티는 건강감지시스템을 갖췄다. 화장실에 들어간 노인들이 30분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센서가 포착해 비상대기 중인 사무실로 신호를 보낸다.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미끄럼 방지 타일이나 복도의 안전 손잡이 등은 실버타운의 기본. 실버타운에 입주한 노인들은 대개 6개월에 한번 종합검진을 한다.

어느 곳이든 전문간호사가 상주하도록 돼있지만 병원과 연계해 운영하는 곳일수록 좋다.

서울시니어스타워는 모기업인 송도병원과 붙어 있다. 노블카운티는 임상병리실과 방사선실을 갖추고 있어 각종 검사를 할 수 있다. 인천해동실버타운에선 양방과 한방 치료를 모두 받을 수 있다.

◇레저·문화='경희대 평생교육원 공개강좌, 정기 산행, 단양팔경 여행…'. 노블카운티의 9월 초순 프로그램 중 일부다. 웬만한 실버타운에선 서예, 단전호흡, 수공예, 음악교실, 영화·음악 감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참여는 자유다. 해발 8백50m의 가야산 중턱에 위치한 해인사실버타운 등 일부 실버타운은 레저·문화 프로그램이 없는 대신, 맑은 공기와 수려한 자연환경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비용=시설과 서비스가 좋을수록 당연히 값도 비싸다. 대부분이 입소할 때 목돈을 보증금으로 내고 매달 생활비를 내는 식으로 운영된다. 대개 보증금은 퇴소하거나 사망했을 때 전액을 돌려받는다. 서울시니어스강서타워(2003년 1월 완공)처럼 아예 분양을 받아 소유권 등기를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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