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에 '보이지 않는 손' 작용하기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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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 경제에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1776년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시장경제 작동 원리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평양, 보이지 않는 손에 접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 경제가 점진적인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김정일의 철권 통치는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2002년 7월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취한 북한이 최근 자본주의를 좀더 허용하려하고 있다며 변화상을 소개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평양에는 350개의 음식점과 가라오케 시설을 갖춘 150개의 술집이 문을 열었다. 일부 식당은 판촉물로 라이터를 돌리기도 한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금지시켰던 햄버거가 대학 구내에서 팔리고 있다. 24시간 편의점이 생겼으며 6~7개의 PC방도 들어섰다.

농업도 변화의 조짐이 있다. 김 위원장은 1일 발표된 신년사에서 농업 생산량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강조했다. 앞으로 북한의 집단농장 경작 단위가 2~3가구 단위로 쪼개질 것으로 예상된다. 평양은 금융 개혁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북한 중앙은행 관계자가 최근 중국과 베트남에서 금융 연수를 받았다. 북한 관리들이 경제개발 교육을 받기 위해 아일랜드를 방문했다. 김 위원장이 좋아한다는 북한의 생수도 이달부터 한국에 반입될 예정이다.

인플레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에 따르면 2002년 7월 전에 ㎏당 8전 하던 쌀값은 현재 44원으로 550배나 올랐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은 물가 안정에 주력하고 있다. 길정우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은 "북한이 시장경제 체제를 향해 움직이고는 있으나 그 속도가 매우 더딘 편"이라고 말했다.

신문은 그러나 정치 분야에는 아무런 자유화 조짐이 없다고 진단했다. 통일부는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이 자유화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주민에 대한 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피터 벡 국제위기감시기구(ICG) 동북아사무소장은 "북한의 경제 개혁과 권력 유지 사이에는 근본적인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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