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에 반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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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성남 금광1 구역 등 1만1052가구에 대한 재개발 사업을 포기하기로 함에 따라 적지 않은 파장이 우려된다. 최근 성남시가 지급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한 까닭에 이번 조치가 양측의 갈등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도 우려된다. 재개발 사업의 표류로 기대감에 들떠 있던 성남 구도심 주택시장에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LH가 추진 중인 다른 개발사업들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재개발 포기에 따라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성남 수정구 일대의 전경. [중앙포토]

◆성남시-LH 갈등 커지나=LH의 재개발 포기 결정은 성남시가 LH에 내기로 한 판교 초과이익금 5200억원에 대해 지급유예 선언을 한 미묘한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건설업계에 관심을 끈다. LH의 공식 입장은 자금난과 사업성 악화다. 실제 LH의 부채는 118조원으로 하루 이자만 100억원에 이른다. 이런 마당에 이주비 등 부대 비용만 수십억원을 들여야 하는 성남 재개발사업은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분양에 성공하려면 성남 인근에서 공급되는 값싼 보금자리주택에 맞춰 분양가를 인하해야 한다. 하지만 주택경기 침체로 분양가를 내려도 분양률이 높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성남시 수정동 K공인 김모 사장은 “3.3㎡당 1000만원 안팎의 보금자리주택이 많이 나오는데 이보다 훨씬 비싼 재개발 단지가 얼마나 분양이 잘되겠느냐”고 말했다.

세입자들의 주거이전비 요구도 사업에 부담이 됐다. 성남 구도심 재개발은 가옥주나 세입자를 수용할 이주단지를 확보해 이사시킨 뒤 사업이 끝나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오게 하는 ‘순환재개발 방식’으로 추진돼 관심을 모았다. LH는 2단계 사업지 이주민을 위해 판교신도시에 4993가구의 순환이주용 임대주택도 확보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LH 관계자는 “이미 상당한 금액이 투입된 상태”라며 “그런데도 주민들의 요구가 계속 늘고, 분양 가능성도 떨어져 사업 전망이 매우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성남시의 지급유예 선언에 대한 LH의 반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건설업체 임원은 “공공기관은 단순히 사업성만을 따져 일을 벌이거나 포기하지는 않는다”며 “가뜩이나 상황이 나쁜데 성남시의 지급유예 발표가 사업을 포기하도록 만든 요인일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정부와 LH는 “정치적 해석을 말아 달라”고 요구한다. 국토해양부 임태모 주택정비과장은 “성남시와 관계가 나빠져 사업을 접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LH가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현재로서는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이 되니까 그렇게 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성남 구도심 개발 무산되나=LH의 통보에 성남시는 아직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LH가 재개발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 성남 구도심 개발은 표류하거나 무산될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LH가 시행을 맡아 직접 사업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주민들이 계획을 세워야 하는 데 경기가 침체돼 사업성이 불투명한 상태이므로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성남시 관계자는 “아직 정식으로 통보받지 못했다. 주민 합의로 다시 하면 사업이 상당히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H건설 재개발팀장은 “처음으로 하는 사업이 아니고 추진되다 망가진 뒤 다시 하면 사업 진척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민 박모(55)씨는 “세입자 이주대책까지 나온 마당에서 갑작스럽게 사업을 접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신흥2지구 신종선 조합장은 “사업을 중단하면 피해가 모두 주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정구 S공인 관계자는 “재개발 기대감에 올라 있던 집값이나 땅값이 상당히 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남시 관계자는 “재개발 사업은 1, 2, 3단계로 추진키로 LH와 협약이 된 상태여서 일방적으로 사업을 포기할 수 없게 돼 있다”며 “LH의 진의를 파악한 뒤 시의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설명했다.

함종선·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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