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싸는'사무실 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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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오는 11월 시행되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불똥이 중소 규모의 사무실 임차인에게 튀고 있다. 상가는 물론 일반 사무실(사업자등록증이 있는 회사)에도 이 법이 적용되면서 임대료를 한꺼번에 올리는 빌딩이 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이면도로에 있는 5층짜리 A빌딩 3층(50평)에 세들어 있던 한 무역회사는 최근 사무실을 비워야만 했다. 건물주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기 전에 임대료를 올려야겠다"며 임대료를 기존보다 20% 정도 높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시설 투자비가 많고 위치와 영업권이 중시되는 상가보다 피해는 작은 편이지만 그래도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임차인들은 짐을 꾸리고 있다.

◇사무실도 임대료 상승 피해=임대료가 비싼 대형 빌딩보다 이면도로나 5~10층 이하 중소 규모 사무실의 피해가 크다. 임대보증금이 서울은 1억6천만원,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은 1억2천만원, 인천·군지역을 제외한 광역시는 1억원, 기타지역은 9천만원 이하일 경우 이 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건물주들은 특히 최근 빌딩시장이 수요 초과 상태로 빈 사무실이 거의 없는 데다 법이 시행되는 11월부터는 연 12%로 임대료 상승폭이 제한되기 때문에 미리 값을 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내 사무실 임대료 기준으로 10% 정도가 이 법 시행을 앞두고 추가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빌딩은 법 적용 대상을 피하기 위해 아예 임대료를 지역별 상한 금액 이상으로 올리고 있다. BS컨설팅 김상훈 사장은 "법 적용 대상이 될 만한 빌딩은 상당수 값을 올려 받았지만 경기 회복세, 공실률 감소 등과 맞물려 조용히 넘어간 편"이라며 "상가는 임대료를 올려도 영업권 등의 이유로 쉽게 비워줄 수 없지만 사무실은 여차하면 이사가는 쪽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명도 앞당기고, 단기계약 성행=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면 종전과 달리 건물주가 바뀌어도 기존 임차인의 대항력을 인정, 함부로 내보낼 수 없다.

때문에 법 시행 전에 맘에 들지 않는 임차인을 내보내기 위해 임대료를 두 배 가까이 올리는 건물도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B빌딩은 최근 소유자가 바뀌면서 평당 3백60만원이던 임대료를 6백만원까지 올리겠다고 엄포를 놔 임차인을 모두 내보냈다.

최근 매물로 나온 빌딩 중 상당수는 추후 명도문제에 대비해 한 달씩 단기계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우투부동산투자운용 최배오 실장은 "임대차보호법이 시행 전까지 건물이 안 팔리면 매수자 입장에서 명도가 골칫덩어리로 작용할 전망"이라며 "따라서 현재 임대차 계약기간이 끝난 곳은 한달씩 자동연장하는 형태로 계약을 유지하다가 건물이 팔리면 바로 비워주는 조건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임동현 정책부장은 "정부가 법 시행시기를 늦추면서 상가뿐만 아니라 사무실 임차인도 곤욕을 치르게 됐다"며 "피해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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