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론:4대문 안 리모델링:역사·자연이 숨쉬는 도시로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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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청계천 복원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6백년 역사 도시의 잊혀진 꿈과 이상이 되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복원에 앞서 할 일이 하나 있다. 4대문 안 옛 서울을 아는 일이다. 어떤 원리로 만들어진 도시였으며, 청계천 복원을 통해 실현코자 하는 삶의 비전이 무엇인지부터 논의해야 한다. 중앙일보가 지난 30년간 '서울 재창조'의 구상을 고민하고 다듬어온 도시계획 전문가 김석철씨를 지면에 초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첫회 총론에 이어 앞으로 아래 그림에 제시한 서울 4대문안의 5개 구역 구조개혁안을 연재할 예정이다.

대개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 대해 무심하다. 삶의 가치를 외면한 경쟁력 없는 도시가 된 때문인데 그 잘잘못을 가리자면 지식인들의 책임이 크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청계천 복원사업을 보면서도 정작 지식인들은 아무 말이 없다. 6백년 역사도시의 틀을 바꾸는 일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 아닌가.

6백년 古都 난개발에 신음

서울은 인간의 질서와 자연의 질서가 아름답게 조화된 윤리의 도시, 자연의 도시였다. 두차례에 걸친 큰 전쟁에도 불구하고 5백여년 동안 원래의 도시 형국을 잘 유지해 왔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왜곡된 도시건설, 도시의 상당부분을 파괴시킨 6·25 전쟁, 그리고 인구집중에 따른 마구잡이 개발 등으로 인해 지난 1백년 사이에 역사 도시의 기본이 무너졌다. 1960년대 이후 그러한 도시 인프라 위에 다시 도시건설이 가속화하면서 서울은 자연과 역사와 인간의 연대가 끊어진 반인간적, 반자연적 도시가 되고 말았다.

도시의 윤리란 입지와 흐름의 조화를 말한다. 서울의 경우 도시의 윤리가 무너지면서 그 근본이 흔들린 상태다. 도성은 무너졌고 옛 도성안에는 무질서한 고층 콘크리트 건물들이 가득하다. 그 사이를 하루 80만대 이상의 차가 마치 점령하다시피 다니고 있다.

서울은 어찌 할 수 없는 도시일까. 아직은 아니다. 세계의 대도시 중 서울만큼 큰 스케일의 역사와 지리와 인간을 가진 도시가 없다. 한강만한 강을 가진 도시가 어디 있으며 북한산과 관악산만한 산을 가진 대도시가 어디 있는가. 세계적 도시인 뉴욕과 도쿄(東京)보다 서울의 역사는 깊고 크다. 그리고 서울에는 세계를 놀라게 한 인간 집합의 거대한 에너지가 있다.

산·강·역사… 인프라 세계 최고

서울을 자연과 함께 하면서 동시에 인간 중심의 역사가 살아있는 도시로 만드는 키워드는 유가(儒家)의 도시원리와 풍수지리 이론으로 만들어진 '4대문 안 서울'에 있다.4대문 안 서울은 버스와 보행만으로 도시 흐름이 이루어지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만한 규모다. 보행 위주로 충분히 기능하게 할 수 있다. 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의 흐름을 도시 내부에 연결하면 자연을 한복판으로 쉽게 끌어들일 수 있는 도시다.

4대문 안 서울을 삶의 쾌적성과 도시 경쟁력을 갖춘 보행 중심의 여러 도시구역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만 차가 다니게 하고, 내부를 공원과 녹지대로 재조직하자. 그러면 자동차의 흐름과 인간의 흐름과 자연의 흐름 모두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4대문 안 서울의 다섯 구역에 대한 도시설계 제안을 여러분과 함께 논의해 보고자 한다. 다섯 제안 중에는 당장 시작해 수년 안에 이룰 수 있는 안도 있고, 십년 이십년 걸려야만 완성될 수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모두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일들이다.

명지대 건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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