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표현 지휘자 리허설 때도 말 아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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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지난 17일 제주시 탑동 해변공연장 내 제주시향 연습실.한국지휘자협회(회장 박은성)가 도야마 유조(外山雄三·71·NHK교향악단 정지휘자 겸 센다이필하모닉 음악감독)를 초청해 지휘 캠프를 열고 있었다. 16명의 지휘 학도들이 참가한 이번 캠프의 과제곡은 하이든 교향곡 제32번 1악장의 시작 부분. 한 명씩 리허설을 끝낸 후 도야마는 이렇게 당부했다.

"지휘대 위에서 머리를 긁지 마세요""연주를 중단할 때는 왜 그랬는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야 합니다""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발을 구르지 마세요""시작할 때는 악보에 머리를 파묻지 말고 단원들과 시선을 맞추세요""뭔가를 요구할 때는 우물쭈물 하지 말고 의사전달을 명확히 하세요""연주가 불만스럽다고 인상을 쓰면 안됩니다.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행복한 순간 아닙니까"…

오케스트라 연주는 리허설의 연장이다. 리허설에서도 고도의 전략과 테크닉이 필요하다. 단원들은 지휘자의 눈빛만 봐도 악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자신감이 부족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지휘자의 실력은 지휘대에 선 후 5분도 못돼 판가름난다.

지휘자의 임무는 음정·박자 등 음악적인 오류를 바로잡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연습에 임하기 전 악보를 보면서 이상적인 사운드를 떠올려야 비로소 수많은 악기들이 빚어내는 음악의 대하(大河)드라마 속에서 통솔력을 발휘할 수 있다.

리듬과 템포를 맞추는 게 지휘의 전부는 아니다. '인간 메트로놈'이 되어선 곤란하다. 살아 움직이는 음악을 만들려면 악기군 간의 밸런스, 연주 스타일, 전체적인 앙상블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유능한 지휘자일수록 연습시간에 말을 아낀다. 연습시간의 60% 이상을 순전히 연주에 할애한다. 어차피 무대에선 제스처로 모든 것을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대 리허설에서까지 말을 많이 하는 지휘자라면 연주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추상적인 설명보다 노래로 시범을 보이는 게 효과적일 때도 많다. 노련한 지휘자는 짧은 시간 동안 리허설을 계획성있게 효과적으로 잘 꾸려간다.

지휘자의 시선이나 얼굴 표정, 몸동작도 중요하다. 몸을 낮추면서 한발 뒤로 물러서는 것은 템포를 늦추면서 여리게 연주하라는 뜻이다. 오른손 동작의 크기는 셈여림을, 왼손을 오르내리는 것은 크레센도(점점 세게)와 디크레센도(점점 여리게)를 나타낸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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