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TV로 생각을 나누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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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현세에서 잘하면 내세가 좋아지게 마련이예요. 내가 강의하는 게 어디 나쁜거요? 나도 좋은 일 하고 있지. 그런데 나만 나오면 나쁜 놈이라고 조져요. 거참 이상하지."

유머 섞인 직설적 화법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26일 오후 2시 EBS 기획특강 '도올, 인도를 만나다'의 첫 녹화 현장. 옥색 두루마기를 입은 채 연단에 오른 도올 김용옥(사진)씨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15개월만의 TV 강연의 소감을 말했다. 그간 신간을 내랴 동국대에서 강연을 하랴 바쁜 일정으로 오른쪽 눈이 심하게 충혈돼 피로해 보였지만 그의 어투는 여전히 자신감에 가득찼다.

도올이 "눈에서 핏줄이 화산 폭발하듯이 터져서 인물이 예전만 못하다"며 잘봐 달라고 말문을 떼자 방청석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층 부드러워진 분위기에서 그는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직업이 한의사예요. 언젠가 30세 여자가 찾아와서 상담을 했는데, 스님에게 사주팔자를 보니 궁합이 안좋아서 결혼을 못하겠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그놈은 스님도 아니야. 여러분은 불교를 몰라도 너무 몰라요."

불교는 사주팔자처럼 인생을 결정론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개인마다 전생의 업(業)이 있는데 현세에 이를 갈고 닦아가면 다음 세상이 더 좋아진다는 논지였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윤회 사상으로 넘어갔다.

인터넷과 전화접수를 통해 고정 방청객에 선정된 3백여명은 1·2회 강연이 이뤄지는 두시간 동안 도올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방청객 유정진(50·여)씨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스님의 설법과 달리 김용옥 선생의 강의는 쉽고 다양한 지식이 묻어나서 좋다"며 "TV로 강의를 보는 것보다 훨씬 머리에 잘 들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과 인도의 불교를 넘나드며 시공을 초월한 그의 입담에 두시간은 어느새 훌쩍 넘어섰고 "오늘은 여기까집니다"라는 도올의 말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지난해 "주위의 비난이 싫다"며 KBS 강연을 갑자기 중단했던 도올이 다시 TV 앞으로 돌아온 이유는 뭘까. 도올은 "TV라는 매체는 역시 파급력이 크다. 내 생각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마성(摩聖)스님이 그의 초기 불교관을 비판한 데 대해 "비판은 우리 사회가 살아있다는 좋은 증거다. 상대방이 제기한 문제에 내가 동감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런데 아직 그런 날이 오지 않았다"며 맞받아쳤다.

대승불교가 주류인 우리나라에서 그가 들고 나온 것이 초기 불교(소승불교)는 앞으로도 많은 논쟁과 화제거리를 낳게 될 것이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도올은 TV 강연이 끝나면 직접 쓴 대본으로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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