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지위 노린 탈북자'공개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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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탈북자 김재곤(60)씨 등 7명이 난민지위 인정을 요구하며 중국 외교부에 진입하다 체포된 사건은 외국공관 진입을 통한 '기획망명'과는 사안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베이징(北京)등 중국 내 외국공관에 들어가 개별적으로 한국행이란 목적을 관철했던 이전의 탈북자들과 달리 金씨 일행은 난민지위 문제에 정면으로 맞부닥친 꼴이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국제적 문제로 비화한 외국공관 진입 사건과 달리 순수한 중국 국내 문제로 처리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金씨 일행의 외교부 진입 시도는 일종의 '공개 시위'로 해석된다. 외교공관이 아닌 중국 정부기관을 택했고, 그것도 몰래 잠입하려 한 것이 아니라 '난민지위 인정' 등 요구사항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는 점이 그같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이들이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외교부 진입을 시도한 것은 관례로 굳어지고 있는 '인도적 처리' 방식으론 탈북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한국 또는 제3국 공관에 들어가 한국행을 요구했던 탈북자들은 중국 정부와 한국 및 관련 국간 협의에 따라 모두 뜻을 이뤘다. 탈북자들의 신병처리를 결정할 때 본인의 의사에 반하지 않도록 한다는 인도주의 원칙을 가장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원칙은 그동안 잇따른 사건을 통해 한·중 양국 간에 일종의 '불문율'로 굳어져 온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들 모두 '개별적' 사안으로 취급되었을 뿐 탈북자들에게 난민으로서의 국제법적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중국 정부의 기본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국제법적으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치적 박해를 받은 사실이 입증돼야 하지만 대부분의 탈북자는 정치적 이유보다 경제적 이유에서 국경을 넘고 있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기본 인식이다.

때문에 金씨 일행이 난민지위 인정이란 뜻을 이루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외교관계자들은 공공기관에 대한 무단침입죄가 적용돼 단순 형사범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전례가 없는 초유의 사건을 접한 한국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운 입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안의 성격상 한국 정부가 金씨 일행의 신병처리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기도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이들의 신병처리를 놓고 중국 정부와 교섭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좁다"고 난감한 입장을 토로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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