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성희롱·거짓말에 기자도 깎아내려 … 강용석 의원 이젠 사과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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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한 대학생으로부터 난데없는 질문을 받았다. 친구로부터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을 전해들었다는 그는 분개한 목소리였다. 기자의 취재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시작됐다. 솔직히 기자는 그때까지 강 의원을 전혀 몰랐다. 찾아 보니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엘리트였다. 법률을 아는 변호사 출신의 현직 의원이 설마 어린 대학생들 앞에서 이런 막말을 쏟아냈을까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당시 저녁 자리에 있었던 학생이 들려준 생생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직접 듣지 않았다면 지어내기도 어려운 표현들이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 작업을 했다. 당시 동석했던 다른 학생들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취재 결과 강 의원의 발언이 실제 있었다는 확인을 하게 되었다.

기사를 쓰기에 앞서 강 의원의 반론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 의원과 직접 통화를 했다. 그는 “그런 말을 전혀 한 적이 없다”며 펄쩍 뛰었다.

반론을 받은 뒤 한창 기사를 쓰고 있을 때 강 의원의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명예훼손의 요건을 한참 설명하더니 “소송 걸면 기자님이 지십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들으니 솔직히 부담감도 생겼다. 하지만 선배들은 “사실의 힘을 믿자”고 격려했다. 강 의원의 발언을 여러 사람이 들었기 때문에 기사가 나가면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강 의원은 기사가 나간 20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성희롱 발언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당시 동석했던) 연세대 학생도 중앙일보 기자에게 ‘제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라고 이미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 의원의 거짓말은 하루 만에 들통이 났다. 모임에 참석했던 학생들이 다음 날인 21일 오후 “중앙일보 기사에 언급된 강용석 의원의 발언들은 실제 있었다”고 확인한 것이다.

강 의원의 발언은 여러 사람들을 욕보였다. “다 줄 각오해야 하는데 아나운서 할래”라는 말로 아나운서들의 명예를 훼손했다. “대통령도 너만 보더라”며 이명박 대통령도 걸고 넘어졌다. “심사위원들이 토론 내용은 안 듣고 얼굴을 본다”며 대학생들의 열성과 지성을 짓밟았다. 여자 국회의원들의 용모를 언급한 발언은 국회의원 모두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성희롱 발언보다 더 나쁜 것은 강 의원의 거짓말이다.

그는 반박 기자회견에서 “2010년 입사한 신입기자가 쓴 첫 기사”라며 기사를 폄훼했다. 그러나 이는 언론의 메커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다. 몇 년차 경력의 기자가 썼든 그 기사는 데스크의 철저한 확인점검을 거친다. 주요 기사는 팩트체커의 사실 확인과 사내 변호사의 법률 검토까지 받는다.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이다. 이들은 꿈을 위해 방학 중임에도 토론대회를 열심히 준비했는데 강 의원으로부터 자존심과 인격을 무시당하는 막말을 들어야 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에도 학생들은 고통받고 있다. 당시 자리에 있던 학생들이라며 확인되지 않은 신상정보와 사진까지 인터넷에 돌고 있다. 강 의원이 빨리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이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데…’. 강 의원은 이렇게 생각하며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다면 학생들 입장에서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됐을지를 먼저 반성해야 한다.

심서현 사회부문 기자 

본지가 보도한 강용석 의원 발언

▶ “사실 심사위원들이 (토론) 내용 안 듣는다. 얼굴을 본다”

▶ (청와대 방문했던 학생에게) “남자는 다 똑같다. 그날 대통령도 너만 쳐다보더라. 옆에 사모님(김윤옥 여사)만 없었으면 네 (휴대전화) 번호 따갔을 것”

▶ (아나운서 지망 학생에게) “다 줄 생각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 ○○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

거짓으로 밝혀진 강용석 의원의 반박

▶ “‘심사위원은 이미지도 본다. 평범한 이미지인데… 손해 본 것 아니냐’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외모만 본다는 말 한 사실 없다.”

▶ “대통령께서 그 학생에게 학교와 전공을 물었던 사실을 얘기했을 뿐 기사 내용 같은 말 한 사실 전혀 없다.”

▶ “아나운서와 기자 중 고민한다기에 아나운서보다는 기자가 낫지 않겠느냐고 밝혔을 뿐이다. 성적 비하 발언 한 사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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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한나라당 국회의원(제18대)

196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