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헷갈리는 '개각 원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노무현 대통령은 4일 국무회의에서 개각의 배경을 민망할 정도로 자세히 설명했다. "부득이 어려운 일을 해결하면서 심정적으로 희생양을 준비하거나 국민 정서를 좀 달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발표된 교육 혁신 과정 같은 것은 대단히 좋은 성과였지만 교육이란 곳이 본시 아무리 잘해도 불만이 가득한 것이어서 교육부총리는 이번에 하차하신다"고 밝혔다.

농림부 장관을 바꾼 이유에 대해서는 "쌀 협상은 아주 참 수고했고 결과도 좋은 것으로 평가하지만 농민들 반발을 달래는 과정이 부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업무는 잘했지만 국민 여론 때문에 장관을 바꾼다는 얘기다. 수능부정 파문으로 교육행정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쌀 개방 협상 타결로 농촌이 들끊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그런 이유라면 경기침체로 서민들 등골이 휘어질 지경인데 경제부총리는 왜 안 바꾸고, 장성 진급 비리 파문으로 군심이 흉흉한데 국방부 장관은 어째서 유임인지 설명할 길이 없다.

노 대통령은 2003년 2월 조각 인선 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최소 2년에서 2년반 정도 장관의 임기를 보장하고, 분위기 쇄신형 개각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 이후 '분위기 쇄신용'개각은 없다는 게 현 정부의 원칙으로 지켜져 왔다. 지난해 고 김선일씨 피살사건 때 외교안보 라인에 대한 시중의 여론이 나빠지자 노 대통령은 "사회적 분위기만으로 책임을 지우려 해서는 안 된다"며 감싸기도 했다. 그런 대통령이 이번엔 돌연히 국민정서를 고려해 장관을 바꿨다고 하니 국민이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해집단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되는 정책을 소신있게 밀고 나갈 장관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또 노 대통령은 정부 출범 당시 "장관은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게 좋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2년 정도 일하면 아이디어도 다 써먹을 만큼 써먹고 열정도 조금 식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너리즘에 빠질 때쯤이 된다"고 털어놨다. 앞으로 각 부처에서 임기 2년이 다 된 장관 말은 우습게 아는 풍토가 생겨날 것이 틀림없다.

김정하 정치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