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방문 닫힌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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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어머니의 방은 항상 열려 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여름에조차 내 방문을 닫았다. 어머니의 방은 그렇게 늘 열려 있는 채 삶은 계란을 벗긴 것처럼 숨길 게 없는 모습이지만, 성인 남자로서의 나는 어머니에게조차 감출 게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 방에 들어올 때 노크를 하지 않았다. 그건 '왜 항상 답답하게 방문을 닫고 있냐'고 나를 힐난하는 어머니에겐 정당한 행동일지 모르지만, 닫혀진 방 안에서 내가 더 자유롭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일종의 '무례'이기도 했다. 내 방은 나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사적인 공간이므로, 어머니라고 해도 쉽게 개방하긴 힘든 거니까.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내 방에 들어올 때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내 방문을 노크하고 나의 기척을 기다려주는 것으로, 내가 더이상 어머니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아들이 아니라, 노출되면 곤란한 영역을 가진 성인임을 비로소 인정해준 것이다. 다만 어머니가 무단 출입할 수 있던 몇개 안되는 곳에서조차 다시 한 번 그 의지를 꺾인 듯 해, 나는 종이가 접힌 듯 조금 우울해졌다.

여자 후배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결혼하기 전 그녀는 항상 그녀 방을 열어놓았다. 열려진 방은 그들이 서로에게 통풍이 잘되는 개방된 가족임을 증언해준다는 것. 그녀의 방이 동쪽에 면해 있는 데다 워낙 거실이 어둑해 방문을 열면 집이 온통 환해진다는 지정학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후배 부부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함께 친정에 들렀을 땐, 너무 많은 것이 변형되어버렸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예전 그녀의 방에 들어가 잘 시간이 되자, 방문을 닫는 건 그토록 어색한 일이 되어 있었다. 30년 동안 매일 열려 있던 방, 언제나 아침이면 어머니·아버지·강아지가 차례로 들어와 그녀를 깨우던 그 방이 이젠 그녀 부부가 열기 전에는 아무도 열 수 없는 방이 된 것이다.

소금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며, 항아리의 본질은 깨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의 본질은 여는 것일까, 닫는 것일까? 나는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문 밖의 존재일까,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갇힌 존재일까? 노크를 해야 그 방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건 지켜져야 할 예의에 관한 것일까, 상실을 의미하는 거리감에 관한 것일까?

이충걸<'GQ KOREA' 편집장·norway@doo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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