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기관 실태 조사 '白書'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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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둘러 '산하단체 백서'를 만들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김판석(행정학) 연세대 교수는 "문제를 풀려면 우선 백서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하단체가 대체 몇 개나 되는지 기초현황 자료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한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백서에는 산하단체의 수·임직원수, 정부 지원 규모와 예산, 기능, 국가위임업무 내용 등이 망라돼야 한다. 투명해져야 국민이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고, 그래야 개혁에 대한 반발 움직임을 차단할 수 있다. 기획예산처가 제정하고 있는 정부 산하기관 관리기본법은 애초부터 이런 점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산하단체 범위 넓혀야=전문가들은 산하단체 범위가 너무 좁게 규정돼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정부 보조금이 해당 단체 총수입의 50% 이상이거나▶정부업무의 위탁 수행에 따른 수입 규모가 50% 이상이어야 산하단체로 지정된다. 그나마 수정안에선▶책임경영체제가 구축돼 있거나▶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필요가 있는 경우는 제외할 수 있는 것으로 완화됐다.

기획예산처는 대략 1백여개 산하단체가 법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렇게 되면 산하단체 개혁은 제대로 안될 것이라고 말한다. 전경련 신종익 상무는 "공기업 등 큰 단체는 감사도 받고 있고 평가도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되는 것은 숨겨져 있어 아무도 내용을 잘 모르는 작은 산하단체"라며 "이 법안대로 하면 이들 단체는 모두 제외된다"고 밝혔다. 송희준(행정학) 이화여대교수도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2백여 경영혁신 대상 기관이 아닌, 나머지 5백여 산하단체"라고 말했다.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자 공공부문에 대한 특혜라는 지적도 있다.

재벌그룹은 주식지분율이 30% 이상이면 계열사로 지정되고, 지분율이 그만큼 안되더라도 사실상 경영을 지배하면 계열사가 되기 때문이다.

◇주무부처가 평가해선 안돼=산하단체의 경영평가를 주무부처에 맡겨선 안된다는 지적이 많다. 사실 초안에는 기획예산처가 산하단체의 경영평가를 주관하도록 돼 있었다. 해임건의 등 인사·예산상 조치도 기획예산처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련 정부부처의 반발로 수정되면서 주무부처 중심으로 확 바뀌었다.

申상무는 "정부부처와 산하단체는 한통속"이라면서 "초안대로 기획예산처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宋교수도 "농림부 산하단체인 마사회의 경우 연간 예산이 7조원에 가까운 데도 체계적인 관리가 안되고 있다"면서 "주무부처의 자체 평가에 맡겨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의 분발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연세대 金교수는 "정치권은 주택공사와 토지공사의 통폐합 하나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국회가 개혁에 동참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선 기본법이 만들어져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석준 행정개혁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정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면서 "내 사람을 챙겨야 하는 현 정치구조에서는 낙하산 인사가 불가피하고, 산하단체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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