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 줄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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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대규모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공무원 연금 줄이기에 나섰다.

캘리포니아주의 약 70개 지방 정부는 새로 고용하는 공무원의 연금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T)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뉴저지주는 31억 달러(약 3조7000억원)에 달하는 연금 지급을 연기했다. 법적으로 공무원들의 연금을 건드리기 힘든 상황에서 일단 관련 지출의 집행을 보류하거나 신규 인력에 대한 혜택을 줄이는 방식으로 ‘허리띠 죄기’에 나선 것 이다. 최근 한국에서 문제가 된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 운용이 공무원 스스로의 발목까지 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LAT의 보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선 공무원의 연금 자기 부담 비율을 높이기 위한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주민 발의 형태로 11월 중간선거 때 투표에 부치는 것이 목표다. 현재까지 7만5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LA 인근 오렌지 카운티는 새로 채용하는 보안관 대리들의 은퇴 연령을 현재 50세에서 55세로 올리고, 연금의 일부를 자신이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계약을 노조와 체결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역시 최근 6개 주 공무원 노조와 신규 채용 공무원의 연금 혜택을 줄이고 본인 부담 비율을 높이는 새 노동 계약에 합의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예산안에 공무원들의 연금 혜택을 1999년 수준으로 되돌리고, 자기 부담금을 5% 더 늘리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을 경우 무조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캘리포니아주의 새 회계연도가 매년 7월 시작되므로 이미 예산안 확정 시한을 3주 가까이 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금 문제 해결 없인 예산도 없다”고 배수진을 친 것이다.

캘리포니아주 지자체들은 그동안 공무원들에게 통 큰 혜택을 제공해 왔다. 샌디에이고시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20년 이상 근속한 공무원이 55세에 은퇴하면 현직 월급의 50%를 받는다. 연기금의 자산 운용 실적이 좋은 해에는 1년에 13번 연금을 타기도 한다. 은퇴자들이 해마다 받는 돈이 평균 3만8484달러(약 4640만원)나 된다. 그대로 둔다면 2025년에는 시 예산의 절반을 연금에 쏟아부을 판이다.

캘리포니아의 이번 회기 적자 규모는 190억 달러로 50개 주 가운데 최악이다. 신용등급도 일리노이주와 함께 가장 낮다. 재정 압박을 견디다 못 한 주 정부는 교사 3만 명을 해고하는 등 긴축 정책을 실시 중이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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