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허용 안 하면 굶어 죽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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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으면 단식으로 목숨을 끊겠다.”

영국인 토니 닉린슨(56·사진)이 영국 검찰에 안락사를 허용해 달라는 문서를 보냈다. 부인이 치사에 이를 수 있는 약물을 자신에게 주사하더라도 부인을 기소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다. 닉린슨은 5년 전 갑자기 쓰러졌다. 이후 사지가 마비됐다. 말도 할 수 없게 됐다. 이른바 ‘자물쇠 증후군’(Locked- in Syndrome)에 걸린 것이다. 이 희귀병은 뇌의 운동신경 통제기능을 마비시킨다. 고개를 좌우로 약간씩 흔드는 것과 눈을 깜박이는 것 정도의 움직임만 가능하다. 하지만 의식은 멀쩡하다. 커다란 문자판의 철자를 순서대로 응시하는 방법으로 단어를 만들어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다.

BBC방송에 따르면 그는 “몸이 간지러울 때 긁지도 못하고 누군가가 매번 내게 밥을 먹여줘야만 한다. 내게는 인권도 사생활도 없다. 남은 인생을 이렇게 살아가기는 싫다”고 눈으로 말했다. 그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리고 당시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5년 전 쓰러졌을 때 구급차에 실리는 것을 거부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스계 건설회사의 간부였던 그는 아랍에미리트(UAE) 건설 현장의 책임자로 일했다.

부인과 가족들은 그의 뜻에 동의한 상태다. 부인은 “치사량의 약물 주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사를 놓으면 살인죄가 적용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힘든 삶의 마감을 원하는 그의 뜻을 헤아려주기 바란다”고 당국에 호소했다. 영국 검찰은 닉린슨의 요구에 대한 답변을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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