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 말보다 실천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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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9개월 만에 재개된 제7차 남북 장관급 회담은 외형상 일정한 성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북측이 서해교전의 도발 책임을 묽게 하면서 지난달부터 착수한 경제 개혁의 기반을 조성하려는 목적에서 드물게 유화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북측은 또 김대중 정부의 임기 내에 남북관계를 일정 수준 복원해 놓는 것이 차기 정부와의 관계를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고, 김대중 정부도 임기 말 실적 쌓기를 원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양측이 경의선 연결 및 그를 담보할 군사 당국자 간 회담 개최 일정, 대북 쌀 30만t 지원을 매듭지을 경협추진위 개최 일정은 물론 추석의 이산가족 상봉 등에 합의할 것으로 예측된다. 과거 같으면 대단한 성과로 비춰질 이런 사안들은 이미 양측 간에 사실상 합의됐던 내용들로 북측의 변덕으로 이행되지 못했던 것들이다.

북측의 성실성 결여가 남북관계 진전의 가장 큰 걸림돌인 상황에서 합의 사항에 대한 북측의 실천을 어떻게 담보해 낼 수 있느냐가 남측 대표단의 최대 과제라 하겠다. 정부는 따라서 깨지기 쉬운 북측의 '선의'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실행에 필요한 '실효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특히 이벤트적인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합의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상설 면회소 설치 및 우편물 교환 일정을 대북 지원 문제와 연계시키는 방법 등도 고려해봄직하다.

북측은 대표단 도착 성명에서 "합의를 과감하게 실천하는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측 환영사의 한 구절로 착각될 만큼 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북측은 이젠 말보다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북측은 우선 서해교전에 대해 명쾌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최근의 수해로 식량난이 더욱 심해진 북측이 남측에서 흔쾌한 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가 순항해야 북측의 경제 개혁이 국제적 도움을 받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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