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 떠난 지 25년 영원한 록 스타 신세대도 열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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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오는 16일로 사망 25주기를 맞는다. 1935년 1월 8일 미국 미시시피주의 오두막에서 태어난 그는 42세이던 77년 텍사스주 멤피스의 호화 저택에서 약물 과다로 숨진 채 발견됐다. 가난뱅이에서 백만장자로 발돋움한 그는 록과 블루스를 묶은 로큰롤이란 음악으로 전세계인들을 열광케한 세기의 스타였다.

1999년엔 미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독자들이 뽑은 '20세기의 인물'에 선정됐는가 하면, 아이오와대학 등은 '프레슬리학'을 개설해 가르치고 있다. 지금도 그가 살았던 멤피스의 저택 '그레이스랜드'에는 해마다 7만~8만명의 팬들이 성지를 찾듯 몰려들고 있다. 또 지난 6월엔 그의 68년 곡 '어 리틀 레스 컨버세이션'을 리믹스한 노래가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영국에서만 18개의 넘버원 싱글과 17개의 넘버원 히트곡을 보유, 영국의 '국민가수'인 비틀스의 차트 기록을 깼다. 하긴 존 레넌이 그랬다지 않던가. "엘비스 이전엔 아무 것도 없었다. 엘비스가 없었다면 비틀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국내에서는 그 동안 수많은 해외 스타들의 팬클럽이 명멸하는 속에서도 지난 70년에 결성된 엘비스 프레슬리 팬클럽은 아직까지도 건재하고 있다. 특히 99년에 개설된 온라인 팬클럽 '리멤버링 엘비스'(cafe.daum.net/elvis)는 현재 5백여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놀랍게도 회원의 절반 이상이 10대와 20대다. 프레슬리 사후에 태어난 신세대까지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사이트의 운영자인 문정윤(CF촬영 프리랜서)씨와 주축회원인 이송·김지훈·황구영(우연히도 이들은 모두 프레슬리가 사망한 77년생이다)씨를 만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매력'을 들어봤다.

#1. 감미로운 목소리-"짜르르 감전된 듯해요"

신세대 팬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10대 초반, 즉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그의 음악을 접했다는 것이다. 특히 프레슬리가 군에서 제대한 후 60년대에 내놓은 음악은 싱그러운 에너지가 넘치던 전기에 비해 한층 부드러워졌다. 메탈 음악이나 컴퓨터 등 인위적이고 차가운 사운드 속에서 커온 신세대에게 영혼을 어루만지는 듯한 그의 목소리는 더욱 충격이었을 게다.

#2. 세련된 패션 감각-"지금 봐도 '짱'이에요"

절정기의 그는 요즘 기준으로 봐도 곱상한, 반항기 엿보이는 '꽃미남'인 데다 섹시한 몸매를 가졌다. 까만 가죽 점퍼와 바지, 또는 하얀 색으로 쭉 빼입은 걸 보면 40여년 전에 활동한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단다.

'플레이밍 스타''비바 라스베이거스' 등 그가 출연한 영화들의 성공에는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한 그의 스타일도 크게 작용했다.

#3. 열정의 무대 매너-"터프 가이, 환상이야"

왼쪽으로 묘하게 일그러진 미소, 그리고 다리와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열창하는 모습을 빼놓는다면 그의 진가를 반도 못 보는 셈. '와'를 이정현의 그 현란한 춤 없이 라디오로만 듣는 것과 마찬가지다. 별다른 무대장치나 백댄서가 없어도 그는 열정적인 몸동작과 노래만으로 관객의 오감을 사로잡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공연실황을 보는 것은 필수다.

#4. 진심이 담긴 노래-"내 마음을 울려요"

프레슬리의 삶을 알고 나면 그의 노래가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백인이면서도 그의 노래에 흑인 음악의 요소가 있는 것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영화 안내원과 화물차 운전사를 전전하던 청소년기의 불우한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열살 연하 여성과의 사랑, 결혼과 파경 등 '산전수전' 다 겪은 삶에서 우러난 그의 노래는 아무래도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5. 현재 진행형의 스타-"이유없이 그냥 좋아요"

그렇다. 한번 그에게 빠지면 이유 같은 건 필요없다. '오빠 부대'가 언제 그런 것 따지던가. 그는 20세기의 '한물 간' 스타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 스타인 것이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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