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6자회담 "꽃 피는 봄은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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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봄은 돼야 할 것 같습니다".

제4차 북핵 6자회담이 언제 열릴 것 같으냐는 질문에 이 문제를 담당하는 정부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현실적으로 좀 더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일 3국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가급적 이른 시일안에 4차 회담을 갖자'는데 공감을 하고 각자 북한을 설득하고 있으나, 북한이 아직까지 전향적 자세를 취할 기미를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4차 6자회담의 재개 여부는 일단 오는 20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제44대 대통령 취임식과 그에 따른 2기 외교안보 진용의 공식 출범, 그리고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 향방을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당국자는 "부시 2기 외교.안보 진용과 대북 정책 향방을 보고 태도를 결정하겠다는 북한의 입장이 맞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6자회담 재개 여부는 그 이후에나 가늠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북한은 작년 11∼12월 두 차례에 걸친 북-미 뉴욕접촉, 북-중 협의에서는 물론, 관영매체들을 통해서도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폐기를 전제조건으로 주장해왔다.

그 같은 주장은 한마디로 말해 부시 행정부가 더 이상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에 대한 전복(regime change)을 꾀하지 말고, 실제로 인정해 달라는 얘기다.

그것도 국무장관 등 일부 고위인사의 '말'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부시 대통령 수준에서 직접 '체제보장'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뒷받침할 만한 실질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게 북한의 요구사항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북한내에서는 최근 군부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6자회담 및 대미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장하는 온건파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도나오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장성민 전 의원(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은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과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의 '북한체제변형'(regime transformation) 발언을 언급한 뒤 "이 두 사건은 북한내 군부 강경파들로 하여금 김정일 체제유지에 극적으로 충성도를 높이고 온건 협상파들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 매우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6자회담 재개 및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는 부시 2기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어떤 태도로 어떤 협상안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장 전 의원은 "북측의 눈과 귀는 크게는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에 어떤 대북 정책의 내용들이 포함될 것인가에, 그리고 작게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자가 첫 작품으로 어떤 타협안을 제시할 것인가에 쏠려 있다"고 말했
다.

그러나 워싱턴 쪽의 분위기는 이 같은 북한의 희망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북핵 문제를 우리 만큼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측의 그런 분위기는 "북핵 문제, 남북관계는 당장 우리에게 닥친 중요한 문제들이지만 솔직히 제3국 사람들에게는 급할 것이 없다"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3일 신년사 발언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당장 이라크 총선이 '발등에 불'인 상황에서 아직까지는 북핵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다룰 만큼 여유도 없고, 그다지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설명인 것이다.

특히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팀은 작년 12월부터 북핵 문제 등 대북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국무부와 국방부 사이는 물론, 국무부내에서조차 강.온파 사이에 논쟁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고위당국자는 "그동안 미국은 '권력 이행기'라서 한반도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며 "북한도 그런 전환 상황을 활용해 관망하는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고위당국자는 이어 "부시 2기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더 강경해진다기 보다는 북한의 반응을 보아가면서 태도를 정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한은 부시 2기 정부의 대북 정책 향방을 보고 움직일 생각인 반면, 부시 2기 정부는 북한의 움직임을 보면서 대북 정책 향방을 정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돼 6자회담 재개까지는 일정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지난 해 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바뀐데 이어, 곧 미국측 수석대표가 바뀌고, 한국의 수석대표도 이번 주말께 이수혁 차관보에서 송민순 차관보로 바뀌는등 6자회담 주요 참가국의 수석대표들의 교체가 이어지는 것도 변수가 되고 있다.

또 다른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아직도 몇달간은 큰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럴 만한 징후도 없다"며 "이상난동이 온다면 모를까 봄은 되어야 꽃이 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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