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불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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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마 전까지만해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통일은 우리의 가장 절실한 희망이었고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사명이었다. 그런데 그처럼 우리의 절대적인 사명으로 인식됐던 통일이 이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20~30년 후에나 생각해볼 수 있는 일로 인식되게 됐다. 그리고 당장 통일은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도 안되고 성취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의 새 컨센서스가 됐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앞으로 가까운 장래에 통일은 안된다는 새 국민적 컨센서스를 우익과 좌익이 모두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통일불가론은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새 정설(orthodoxy)로 자리잡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 통일 불가론은 1백% 확실한 것인가? 20년, 30년 기다릴수록 통일비용이 줄어드는 것은 틀림없을까? 통일방법도 세월이 흐를수록 더 평화적으로 되고,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도 더 용이하게 된다고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는 통일 불가론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통일비용에 대해서는 얼마가 되리라는 수치를 제시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모두가 불확실한 가정 아래 임의로 추정한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통일비용이 얼마가 되든 앞으로 몇십년 기다리면 감소된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앞으로 북한의 경제성장 속도가 남한의 경제성장 속도보다 앞서가지 않는다면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는 지금보다 더욱 벌어지고 통일 비용도 더 많아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남한보다 앞서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렇게 될 전망도 보이지 않고 그렇게 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통일 비용 문제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독일 통일을 보고 나서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오늘날 독일 사람들은 통일비용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독일이 통일된 사실을 후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통일 비용 문제를 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통일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통일을 지연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보다도 어떻게 하면 통일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

다음은 통일과정에서 주변 국제관계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통일 불가론자들은 강대국들이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그러나 독일 통일과정에서 보면 독일은 통일의 결과로 주변 국제관계가 더욱 안정된다는 점을 주변 주요국들에 설득함으로써 동의를 얻어냈던 것을 기억한다.우리도 통일한국이 분단한국 보다 동북아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통일외교의 기본전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통일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우리에게 편리한 때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북한체제가 붕괴되면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통일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북한 체제의 운명은 그 누구도 예언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북한 체제는 지금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다는 사실뿐이다.

북한은 태어날 때부터 이념적 스폰서의 역할을 해준 사회주의 국가들이 모두 붕괴됐든가 변질돼버린 마당에 홀로 남은 고독한 존재로서 과거에 사회주의 형제국가들이 제공하던 경제 원조가 끊어진 오늘날, 과거에 원수국가로 간주해온 자본주의국가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나가는 처참한 지경에 놓이게 됐다. 다시 말하면 북한은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에만 처해있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최근 북한은 바로 그와 같은 어려운 조건에서 이른바 경제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개혁은 성공한다고 해도 북한은 심각한 인플레와 실직자 문제들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경우 북한 체제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할 수밖에 없다. 먼 훗날이 오기까지 통일은 없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우리의 통일은 우리가 통일을 가장 예상하지 않는 순간에 찾아 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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