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천 30% 여성 할당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한국 여성의 사회 기여도는 상위권이지만 정치적 권리는 바닥권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지난 3월 발표한 '남녀평등 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1백46개국 중 27위로 비교적 양호했지만,'여성권한 척도' 순위에선 66개국 중 61위로 꼴찌 수준이었다. 남녀평등 지수는 경제활동참여도를, 여성권한 척도는 여성의 국회의원과 고위직 공무원 참여 비율을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한국 여성들이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몫에 비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16대 국회의원 2백72명 중 여성은 17명으로 6.3%에 불과하다. 전 세계 여성 국회의원의 평균비율(14.7%)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숫자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여성후보의 비율은 3.6%였다.

이에 따라 여성계·학계를 중심으로 '여성의 제몫 찾기'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선 모든 선출직 후보의 30%를 여성에게 강제 할당토록 관계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를 대선후보들이 공약으로 선택하도록 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유엔은 1995년 중국 베이징(北京)세계여성대회 이후 모든 부문에서 여성을 30% 참여시킬 것을 각국에 권고하고 있다. 특히 정치분야에서 여성이 30% 이상 참여해야 '절반'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30%는 약자가 강자에 맞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율이란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2000년 6월 각급 선거 후보에 여성을 50% 공천토록 하는 '남녀동수 공천법'을 제정했고, 이를 위해 99년엔 개헌까지 했다. 프랑스의 여성 시의원 비율은 22%에서 47.5%로 두배 이상으로 늘었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당수는 97년 총선을 앞두고 후보·당직자의 남녀비율이 50%씩 되도록 당헌·당규에 규정했다. 부패가 심한 보수당을 이기려면 깨끗한 이미지의 여성과 청년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그 결과 노동당 소속 당선자 중 여성이 22.9%(94명)를 차지했고, 집권까지 했다.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80년대 후반부터 여성의 정치참여 비율이 30~40%로 높아지면서 정치쟁점이 환경·복지 등 생활밀착형 주제로 바뀌고 부패 스캔들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한양대 이영(榮·경제학)교수는 "국회와 정부에 진출한 여성비율이 10%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산출하는 국가별 청렴도 지수는 12%포인트씩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경제 효율성과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여성의 대표성 보장을 위한 정치관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성개발원 김원홍(金元洪)연구위원은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대세"라고 말했다.

이하경·최상연·박신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