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민주당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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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그렇다. 선거 전만 해도 김대중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야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번 선거에는 지난 지방선거와는 달리 '혹시' 민주당이 한두 군데 접전지역에서 이변을 일으키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8·8 재·보궐선거도 '역시나'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나고 말았다.

민주당이 맞불작전으로 제기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5대 의혹도, 김대업씨의 고발로 다시 불거진 후보의 아들 정연씨의 병역면제와 관련된 병풍도, 한나라당의 일당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한나라당 견제론도,'마지막 재야'라는 장기표씨의 영입공천도, 지방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한 바 있는 부패정권 심판론을 넘어서는 데는 무력하기만 했다. 하긴 김대중정부가 "열명이 살기 위해서는 두명은 희생돼야 한다"며 힘없는 서민들에게 피눈물 나는 구조조정의 고통을 강제하고 있는 동안 대통령의 아들은 재벌기업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아 베란다에 수표더미를 쌓아 숨겨놓고 품위유지비로 월 1억원씩을 써댔으니 부패정권 심판론이 쉽게 사라질 수 있겠는가.

떠난 민심도 민심이지만 민주당의 자충수도 이번 참패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우선 민주당은 하고한날 신당창당론을 놓고 노무현 진영과 반노무현 진영이 싸우는 '적전분열'사태를 연출했다. 또 떠난 민심을 잡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지난 국민경선제 흥행과 마찬가지로 이번 선거 후보선출에 주민경선제와 같은 상향식 예비선거제를 도입해 바람을 일으켰어야 했다. 그러나 새로 만든 정당민주화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다시 한번 밀실공천을 해 그 같은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사실 한국 정치사에서 이번 선거가 갖는 진정한 의미는 한나라당이 압승하고 민주당이 참패한 선거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국민경선제 도입 등 포스트 3金시대의 정당민주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민주화가 필요한 국회의원후보의 공천과정에 있어서 3金식의 밀실공천은 여야 모두 전혀 바꾸지 않은 실망스러운 선거라는 사실에 그 진정한 의미가 있다.

이번 선거로 이제 한나라당은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확실하게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따라서 부패정권 심판론의 분위기를 오는 대선까지 이어가고 민주당의 병풍(兵風)공세 등을 무력화하기 위해 권력형 비리와 공적자금에 대한 국회조사와 청문회 개최 등을 밀고 나가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과반수 의석 차지에 걸맞은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한나라당은 명심해야 한다. 특히 한나라당이 두 민주화운동 출신 대통령의 실패 덕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수구세력'이 아니라 21세기 한국을 이끌어갈 미래지향적 세력임을 구체적인 정책과 행동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가뜩이나 비주류 세력의 신당공세에 시달려온 민주당은 신당창당 움직임이 더욱 급물살을 탈 것이 자명하다. 물론 신당창당은 자유다. 그러나 국민경선제를 통해 선출한 후보를 사퇴시키고 신당을 창당하려는 것은 국민경선제에 참여한 국민들을 희롱하는 국민 사기극에 다름 아니다. 노무현 후보를 사퇴시키고 신당을 창당하려면 국민경선제에 참여한 국민들을 다시 모아 투표를 통해 의견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신당은 미래지향적 신당이어야지 국민들이 외면하고 있는 낡은 퇴출대상자들과의 정략적인 반이회창 연합이어서는 안된다.

김대중 대통령도 이번 선거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金대통령은 지난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도 아태재단의 사회환원을 거부하는가 하면 개각에서 아들 김홍업씨에게 거액의 용돈을 준 것으로 밝혀진 고위공직자들을 유임시키고 오히려 청와대의 압력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 법무장관을 경질하는 등 민심에 반하는 행동을 계속했다. 그 결과 부패정권 심판론이 지속하는 데 일조를 해 한나라당의 승리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따라서 金대통령이 지금처럼 본의 아니게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행위를 중단하고 약속한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보다 발본적인 자기반성과 자기개혁의 모습을 보여주어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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