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중도금 어찌하나 … 분양시장에 대출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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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금 무이자 대출’ 조건으로 경기도에서 아파트를 분양하고 있는 A건설사는 집단대출(중도금 대출 등)을 해줄 은행을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회사 임원은 “아파트 계약률이 20%는 넘어야 대출할 수 있다는 게 은행들의 입장”이라며 “이 때문에 해약하겠다는 계약자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 시장에 대출 비상이 걸렸다. 중도금을 서로 빌려주겠다던 금융회사들이 최근 들어 대출을 아예 꺼리거나 한도를 줄이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주택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사나 계약자는 자금 부담이 커지게 됐다.

금융사들의 입장이 바뀐 것은 아파트 분양이 잘 안 되면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진다는 불안감이 커진 데다 보증을 서는 건설사들의 자금사정을 믿지 못하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감독원이 최근 집단대출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나서자 금융사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중견 건설사가 분양하는 소규모 사업이나 미분양이 우려되는 지방 분양 프로젝트는 대출 기피의 주요 대상이다.

◆대출 안 하고, 한도 깎고=2008년 경기도 고양시의 S아파트를 분양받은 김모(50)씨는 최근 중도금 대출에 대한 연체 이자를 내라는 은행의 독촉장을 받았다. 워크아웃(기업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한 시공사가 6회차 중도금 대출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하자 은행이 계약자들에게 부담을 지운 것이다. 김씨는 “건설사가 분양조건을 어긴 것이므로 계약파기 사유가 된다” 고 말했다.

5월부터 서울 강북권에서 아파트를 분양 중인 D건설은 요즘 계약자들의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당초 분양가의 60%까지 대출해 주는 조건으로 분양을 시작했으나 은행 협의 과정에서 최고 50%로 대출한도가 깎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주택금융공사의 대출보증서를 발급받은 계약자만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신용등급이 낮아 중도금을 한 푼도 빌리지 못하는 계약자까지 생겼다.

◆예정된 분양 연기 사태도=은행들의 입장은 분명하다. 기업은행 개인여신팀 이명환 과장은 “자금사정이 좋다고 알려진 건설사도 갑자기 부도나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건설사의 지급보증만을 믿고 대출할 수는 없다”며 “미분양, 입주 지연 사태가 장기화하면 중도금 대출이 더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인천의 금호아파트 계약자 164명에게 384억원을 중도금으로 빌려준 농협은 이 아파트 공매를 검토하고 있다.

계약자들이 중도금 대출금 상환을 미루는 데다 대출 지급보증을 한 건설사마저 더 이상 이자를 내기 어렵다고 두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출 중단 및 축소 파장은 크다. 입주 때 중도금 대출을 주택담보대출로 바꾸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계약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입주한 대전시 유성구의 151㎡형 아파트 계약자인 한모(45)씨는 입주를 일주일 앞두고 급히 돈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중도금을 빌려준 은행이 새 아파트 시세가 많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담보대출 전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단지 입주예정자 244명은 2700만~3000만원을 다른 데서 빌려 입주 잔금을 마련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주택분양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인허가를 거쳐 분양에 나서려고 해도 중도금 대출이 안 되면 분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D건설은 은행과 중도금 대출 협약이 안 돼 이달 예정이었던 경기도 양주시 아파트의 분양을 10월로 미뤘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이달 서울에서 분양될 8곳 중 7곳의 청약이 미뤄졌다. 건설산업연구원 김민형 연구위원은 “분양시장의 돈줄이 마르면 건설업체와 계약자들은 더 어려워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함종선·임정옥 기자

◆집단대출=금융회사가 아파트 계약자나 입주 예정자에게 한꺼번에 대출하는 것으로 중도금 대출과, 중도금 대출에서 갈아타는 주택담보 대출이 있다. 중도금 대출은 금융사가 건설사의 지급보증으로 분양가의 60%까지 빌려줬으나 최근 이 비중을 줄이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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