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침수피해 서울 경인유통상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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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 복개천을 따라 자리잡은 경인유통상가.

전날 시간당 90㎜에 이르는 국지성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본 상가 앞에는 흙탕물에 잠겨 이제 폐기물이 돼버린 가전제품 등이 곳곳에 널려 있다. 상인들은 그나마 헐값에라도 팔아볼 수 있는 물건이 있을까봐 폐기물 더미를 뒤졌다.

특히 지하층을 창고로 사용하던 상인들의 피해가 컸다. 지난해 1백여평의 창고에 물이 차 5억여원의 피해를 봤다는 아로나전자 관계자는 "물에 잠겼던 소형 청소기를 5t트럭 두대에 나눠 폐기처분했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전날 저녁부터 밖으로 꺼내놓은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 광명지역 군부대에서 지원나온 70여명의 병력들도 이를 치우는데 반나절 이상이 걸렸다.

인근 생활용품·전자제품 유통업체인 수경엔터프라이즈의 승윤배(39)대표이사도 5일에도 집중 호우가 내릴 수 있다는 기상예보에 밖으로 꺼내놓은 물건 위로 비닐 천막을 씌우면서 복구작업에 땀을 흘렸다. 지난해 1억5천만원 가량 수해를 입었는데 올해 또 6천여만원 정도 피해가 발생했다는 承씨는 "올 여름 비만 오면 집에 가지 못하고 직원들끼리 돌아가며 비상근무를 서왔다. 기상청에서 예보만 제대로 했더라면 사무실을 지켜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집중호우를 예보하지 못한 기상청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이 상가는 20여년 전 안양천으로 연결되는 개천이 복개되면서 서울과 인천지역을 연결하는 가전 및 각종 생활용품 유통 중심지로 모두 2백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상인들이 지난해 수해를 입었는데도 별다른 수해 방지 조치를 취해주지 않은 당국의 안이한 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1백37개 업체에서 2백여억원에 달하는 수해를 입었지만 기껏해야 업소당 1백50만원 정도의 보상금과 양수기 몇대를 나눠준 것이 고작이었다.

상인들은 휴가철에다 일요일 새벽 내린 집중호우라서 피해가 더 컸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침수 피해를 본 70여개 업체 상인들은 지난해와 올해 모두 일요일 수해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수해가 발생한 7월 29일이 일요일이었고, 올해 역시 공무원들의 근무 체계에 허점을 드러낼 수 있는 휴일이라는 것이다. 상인들은 복개천이 안양천으로 연결되는 곳에 위치한 신정1빗물펌프장이 올해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혹을 제기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날 오전 10시까지 찰랑찰랑하던 복개천 수위가 30여분 만에 하수관을 타고 넘칠 정도로 불어날 리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펌프장을 관리하는 양천구청 관계자는 "펌프장은 전날 오전 7시21분부터 시간당 38만3천t을 처리할 정도로 충분히 가동됐다"며 "오히려 시간당 강우량 74㎜가 처리 용량 한계인 하수관로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 서울시 쪽으로 책임을 돌렸다. 이에 대해 이날 오전 강서·양천구 일대 수해지역을 찾은 이명박(明博)시장은 "신정1빗물펌프장 증설을 예정보다 이른 2004년 이전으로 앞당기고 하수로 확장공사는 지역별로 분할해 착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인유통연합회 박상근(朴商根)사무국장은 "올해 수해는 천재(天災)보다는 지난해 이후 수방조치를 게을리한 인재(人災)에 가까운 만큼 수해를 입은 상인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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