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리지 파문' 權·言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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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누구나 자신의 견해를 말과 글,그림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하고 전파할 권리를 가지며… 언론자유와 방송 및 영화를 통한 보도의 자유는 보장된다. 사전 검열은 행해질 수 없다.'

독일의 우익 대중신문인 빌트지의 카이 디크만 편집국장이 5일 사설을 통해 집권 사민당 사무총장에게 아느냐고 물은 구절이다.

이는 언론자유를 규정한 독일 기본법(헌법) 제5조 1항의 내용이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국민 세금으로 이득을 취하는 정치인들의 비리를 끝까지 보도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집권당과의 전면전 선언이다.

이는 프란츠 뮌터페링 사민당 사무총장이 빌트지를 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데 대한 빌트지의 맞대응이다.

뮌터페링은 지난 2일 빌트지 등을 불법 정보취득 혐의로 고소했다. 나아가 사민당은 관련 미디어법 개정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물론 빌트지가 주도하고 있는 이번 '마일리지 스캔들'은 우익언론의 좌파 때리기란 인상이 짙다. 그간 독일 정치인들이 공무용 항공여행으로 얻은 보너스 마일리지를 개인용도로 사용해 온 것은 일종의 관행이었기 때문에 유독 좌파 정치인들만 연루됐을 리 없다.

지금까지 스캔들에 연루된 것으로 빌트지가 보도한 정치인은 모두 아홉명. 일곱명이 좌파인 여당 소속이고 우익 야당 소속 정치인은 두명에 불과하다. 누가 봐도 일방적이다.그래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를 비롯한 집권 좌파 정치인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고, 급기야 소송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집권당의 처사에 대해 독일 언론들은 5일 일제히 '언론에 대한 재갈 물리기'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좌파 정권에 우호적이던 좌파 언론들까지 가세했다.

독일의 대표적 좌파 언론인 슈피겔지의 슈테판 아우스트 편집국장은 "정치인들이 선거에 집착, 언론에 '총기난사' 같은 법적 대응을 하고 심지어 언론의 독립을 해치는 법 개정까지 하려 든다"고 비난했다.

독일 최고의 권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프랑크 쉬르마허 발행인도 "지진이 났다고 지질학자를 공격하는 격"이라고 일갈했다. 아무래도 총선을 앞둔 사민당이 큰 자충수를 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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