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Ⅱ'가 몰고올 파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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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요즘 미국 수도 워싱턴에선 이라크 공격이 최대 화제다. 며칠 전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이라크 공격을 주제로 청문회가 열렸고, 미디어는 연일 머리기사로 다루고 있다. 일부 미디어는 11년 전 걸프전의 속편(續篇)이라는 의미로 할리우드 영화 제목처럼 '걸프전Ⅱ'라고 이름붙였다. 하지만 걸프전과 걸프전Ⅱ는 같은 부시 성(姓)을 가진 미국 대통령이 치른다는 점을 제외하곤 여러 면에서 크게 다르다.

우선 걸프전은 28개국이 다국적군으로 참전했지만 걸프전Ⅱ는 그렇지 않다. 아랍권은 물론 유럽 국가들도 전쟁에 반대다. 프랑스와 독일은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하고, 러시아와 중국도 같은 입장이다.현재로선 미국과 영국 아니면 미국 단독으로 전쟁을 치러야 할 판이다. 당연히 전비(戰費)도 미국 혼자서 부담해야 한다. 걸프전에선 전체 6백11억달러 중 1백27억달러만 미국이 부담했다.

또 하나 걸프전에선 이라크군을 몰아내고 쿠웨이트를 해방시키는 것으로 전쟁이 끝났지만 걸프전Ⅱ는 이라크 영토 안으로 진격해 들어가 사담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는 것이 목표다.

따라서 후세인도 걸프전에선 사용을 자제했던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해 사생결단을 내는 식으로 저항할 것이다. 미국으로선 불과 수백명 희생자를 내는 것으로 끝났던 걸프전과 달리 상당한 인명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미국이 구상하는 작전은 두 가지다.하나는 공습에 이어 대규모(7만~25만) 지상군을 투입하는 정공법이다. 이라크군은 상당한 전력을 갖춰 공습만으론 해결되지 않으며 지상군 병력 투입이 필수다. 다른 하나는 수도 바그다드 등 1~2개 지역에 소규모 특수부대를 투입해 이라크군 지휘부를 마비시키고 대량살상무기를 무력화한 후 후세인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그동안 논의돼온 반정부세력을 이용한 대리전은 실효성에 문제가 있어 포기한 것 같다.

이라크는 어떻게 대응할까.먼저 공격을 피하기 위해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고, 공격을 받으면 미군을 장기간 수렁에 빠뜨리는 전략이다.

미국의 공격은 아랍권 전체에 대한 공격이라는 논리로 반미 분위기를 조성하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집중 부각시킨다. 전쟁 개시 48시간 안에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스커드 미사일을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해 중동전으로 확산시킨다. 또 병력을 주로 대도시 민간인 주거지역에 분산 배치함으로써 미군의 작전 수행을 어렵게 할 것이다.

미국은 걸프전Ⅱ가 단기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만약 장기화할 경우 유가 폭등으로 세계경제엔 재앙이 닥칠 것이다. 석유 전문가들은 유가가 최고 배럴당 6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라크로부터 전체 석유 수입량의 8%를 들여오고 있는 미국도 피해를 볼 것이다. 미국은 석유 비축량을 7억배럴로 유지하기 위해 지난 1월부터 석유 수입을 늘려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 후'다. 미국은 아직 구체적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중동 전문가들은 이라크가 셋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밖에 쿠르드족 독립국가 건설, 미군의 이라크 장기 주둔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여기에 주변국들의 정정(政情)이 불안해지면서 중동 전체가 대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압둘라 요르단왕의 경고는 그런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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