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푸레 나무와 물새들의 푸근한 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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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가지를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러진다고 물푸레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 어린 물푸레 나무가 동화의 주인공이다. 물푸레 나무는 소리내라는 개울가에 자리를 잡고 숲 속 이야기를 소곤소곤 들려준다. 여름새·겨울새·텃새와 뭉툭·뾰족·길쭉·납작 돌멩이들과 대화하며 세상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자세가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 같기도 하다. 물푸레는 우정을 나누던 꼬마물떼새 부부가 그들이 낳은 알을 사람들 때문에 잃는 과정을 목격한다.

세상살이가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인간들의 무심한 자연 훼손이 얼마나 큰 피해를 끼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어린 독자들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이런 험난한 과정 속에서도 결국 새 생명, 새끼 꼬마물떼새가 탄생한다고 결말을 짓는 것이다.

어른 낚시꾼들은 꼬마물떼새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알을 집어가지만, 나무를 걷어차며 질색이라고 했던 아이들은 물푸레의 목소리를 듣고 알을 살며시 내려 놓는다. 오소리도 물푸레와의 우정 때문에 맛좋은 꼬마물떼새알을 포기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동심과 자연 사이의 교감, 생태계의 오묘한 조화 등을 교훈으로 제시한다.

이 동화는 가슴 따뜻한 내용도 좋지만, 물 흐르듯 잘 쓰여진 문장과 어감 좋은 단어들이 우리 글 배우기에 더없는 책이다. 작가 조호상씨는 『야생동물 구조대』『울지 마, 울산바위야』 등 이전 작품에서도 시어가 녹아 있는 아름다운 글쓰기로 주목받았다. 1989년 『사상문예운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다음해 제3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다. 글솜씨에 믿음이 가게 하는 이력이다.

이번에도 시같은 글들을 책 속에 보여준다. "물푸레 나무!/ 난 이 이름이 맘에 꼭 둘들어/연거푸 불러 보렴/단박에 기분이 세 배쯤 좋아질걸/어쩌면 다섯 배나 일곱 배쯤일 수도 있고/그래서 난 걸핏하면 내 이름을 불러/조금만 슬퍼도 물푸레, 물푸레, 물푸레…/조금만 울적해도 물푸레, 물푸레, 물푸레…/조금만 억울해도 물푸레, 물푸레, 물푸레…." 운율 맞춰 읊조리면 그대로 노래가 되어 나올 것도 같다. 그 많은 나무 중에 물푸레를 택한 것도 입술을 울리고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어감 때문인 듯하다.

글을 받쳐주는 그림도 눈길을 끈다. 동양화가 이정규씨의 수묵 담채화는 이전 책보다 자연 묘사가 많아져 더 맛이 난다. 꼬마물떼새의 갈색 깃털에서 세심한 붓질이 느껴지고, 조약돌 뒹구는 소리내 개울가 모습은 한폭의 산수화같은 느낌을 준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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