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경제학자’에 휘둘려 버블 합리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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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호 24면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거치며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떠올랐다. 미국인들은 승리감과 미래에 대한 낙관에 취했다. 이런 분위기는 경제학자들에게도 전염됐다. 이른바 ‘새 시대 경제학(Economics in New Era)’이 등장했다. 논리의 핵심은 영원한 수확체증의 법칙이다.

1920·80년대 美·日의 경험

새 시대 경제학을 대표한 학자 겸 금융인 워딜 캐칭스(1879~1967)는 “미국은 구대륙(유럽)과는 달리 인습과 신분제의 흔적이 없는 자유로운 국가”라며 “기업인들이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어 시간이 갈수록 순이익이 점점 더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캐칭스는 그 근거로 거대 기업집단인 트러스트를 들었다. 그는 “US스틸 같은 기업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최적 구조”라며 “미국인들의 트러스트 발명은 모든 경제논리를 흔들어 놓았다”고 목청을 돋웠다. 그는 이론가로만 머물지 않았다.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출자를 받아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여러 업종의 트러스트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결과는 비참했다. 1929년 10월 대폭락이 발생했다. 그가 사들인 트러스트 주식들은 휴지 조각으로 전락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순이익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 트러스트들이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끌어들인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줄줄이 무너졌다.

비슷한 일은 80년대 일본에서도 발생했다. 미국을 곧 능가할 듯한 경제력과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일본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뉴욕 맨해튼의 마천루에서 하와이 최고 골프장까지 사들였다.

그 시절 일본 경제학계에선 ‘니혼진론(日本人論)’이 유행이었다. 시작은 ‘일본 경제가 왜 미국을 위협할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었는가’를 규명하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적인 오만에 취해 상당수 학자들이 버블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그중 한 명이 당시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인 이마이 기요시다. 그는 “일본 경제는 미국식 개인주의에 의해 작동하고 있지 않다”며 “협력과 상생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기업들의 게이레츠(계열) 구조를 예로 들었다. 은행과 제조업체가 협력과 상생 구조로 묶여 있는 증거라는 얘기였다.

그는 “미국 기업들이 이전투구식 M&A로 돈을 낭비하고 있을 때 우리 일본 회사들은 게이레츠의 안정적인 시스템 속에서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며 “일본이 사실상 미국을 이겼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결말은 1920년대 미국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이었다. 일본의 거품은 붕괴했다. 수많은 금융회사들의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지만 나눠먹기식으로 짜인 게이레츠 때문에 구조조정이 지연됐다. 일본 경제는 장기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간 나오토 일 총리의 경제교사인 오노 요시야스 오사카대 교수는 지난달 17일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80년대 오만을 부린 경제전문가들을 ‘불량 경제학자(Rogue Economist)’라고 불렀다. 그는 “노무라증권 경제분석가들이 닛케이지수가 95년이 되면 8만 선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분위기를 선점하는 바람에 당시 반대 논리나 주장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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