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우리가 이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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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몸은 피곤하지만 해보고 싶었던 실험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부산대 이호성(李浩性·25·미생물3)씨는 한달 가까이 포항공대 실험실에 틀어박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연구 주제는 특정 유전자를 없앤 쥐를 관찰해 이 유전자의 역할을 밝혀내는 것이다.

고교생들의 이공계 진학 기피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경북대 등 전국의 이공계 대학생 40명이 방학기간을 이용해 바깥 세상과 담을 쌓고 포항공대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은 포항공대가 두뇌한국(BK)21 사업의 하나로 2000년부터 진행 중인 '하계 연구장학생 프로그램' 참가자들이다. 이과대 분자·생명과학부의 실험실 27곳이 이들의 공부방이다. 각자 배정된 실험실에서 지도교수와 석·박사 과정 선배들의 지도를 받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운다.

분자생명과학부 유성호(柳成浩)교수는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던 학생들이 '연구와 실험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첨단 기자재를 사용하고 교수들로부터 개인지도를 받는 기회인 만큼 참여 경쟁률도 치열하다. 전국의 지원자 1백33명 가운데 선발돼 경쟁률이 4대1을 넘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재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참가 학생의 학교 성적은 평점이 거의 만점에 가깝다. 연구기간 40일 동안 장학금 50만원과 기숙사비 10만원 등 생활비 60만원도 지급된다. 그러나 전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려 장학금을 쓸 시간도 없다고 한다.

고려대 홍주영(洪珠映·22·여·생명과학부4)씨는 "오전 9시 연구실에 들어가 새벽 두시쯤 기숙사로 돌아간다"며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한다는 자부심에 피곤한 줄 모르겠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기존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교수와 상의해 자신이 정한 주제를 연구한다.교수의 지도로 협의해 한주 동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정하고 주말엔 성과와 문제점 등을 토의한다.

이화여대 김수미(金粹美·22·제약학과)씨는 평소 관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신체 내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매개물질을 찾는 과정이다.

金씨는 "평생 연구를 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활짝 웃었다.

서판길(徐判吉·분자생명과학부)교수는 "방학 중에 보통 학생들이 기피하는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도전하는 학생들이 기특하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실험과 연구를 시작한 이들은 다음달 10일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각자의 학교로 돌아간다.

포항=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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