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지휘자의 싱싱한 ‘나의 조국’ 감상하실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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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구촌 곳곳의 오케스트라가 젊어지고 있다. 예컨대 미국 동부 명문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지난달 단박에 39년 젊어졌다. 샤를르 뒤트와(74)의 뒤를 이을 음악 감독으로 야닉 네제 세귄(35)이 지목됐다. 지난해 LA필하모닉에 취임한 구스타보 두다멜은 스물여덟 살이었다. 영국의 다니엘 하딩(35)은 3년 전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를 맡았다.

체코의 야쿠프 흐루샤(29·사진)도 이런 흐름에 한몫 하는 지휘자다. 2년 전 스물일곱에 프라하 필하모니아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22일 서울 공연을 앞둔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정확한 기록이 필요하겠지만, 아마 세계 교향악단 음악감독 중 최연소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젊은 기록’은 올해에도 이어졌다. 체코의 상징적 음악행사인 ‘프라하의 봄 음악축제’에서 오프닝 콘서트를 맡았다. 이 콘서트의 전통은 체코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오프닝에서 연주하는 것. 1946년 이후 계속됐다. 흐루샤는 1949년 지휘를 맡은 바츨라프 노이만(1920~95)과 ‘동률’로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또한 영국 오페라 페스티벌인 글라인드본의 투어 프로그램 음악감독 자리도 맡게 됐다.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흐루샤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젊은 지휘자에겐 분명 약점이 있다. 하지만 그걸 장점으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며 “나이 많은 지휘자가 단원들을 이끌고 지도하는 입장이라면 나는 단원들에게 배운다는 생각으로 지휘대에 오른다”고 했다.

그는 젊은 지휘자들의 유의사항도 귀띔했다. “자신이 충분히 공부하지 못했거나 자신이 없는 작품을 무리해서 연주하지 않아야 해요. 저도 말러나 브루크너의 마지막 교향곡 등은 천천히 기다리며 공부하려 합니다. 스스로 규율과 확신이 있다면 ‘너무 어리다’는 주변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흐루샤는 지휘봉을 잡기 전 피아노·트롬본 등을 다뤘고, 클래식에서 재즈에 걸쳐 다양한 음악을 공부했다. 현재 BBC 심포니 지휘자인 이르지 벨로흘라베크의 눈에 띄어 지휘에 입문했다. 체코필하모닉, 파리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부지휘자를 거치며 기초를 쌓았다. 또 파리에서 2년 동안 지휘자 정명훈씨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는 “단원들의 정신력까지 장악하는 방법에 대해 배운 시기였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첫 내한인 이번 공연에서 흐루샤는 서울시향을 지휘해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전곡을 들려준다. 체코 본토의 젊고 싱싱한 ‘최신판’ 해석이랄 만하다.

▶22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만∼5만원. 02-3700-6300.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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