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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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과 유럽 각국은 정치자금을 '민주주의 체제의 유지비용'으로 받아들인다. 그 대신 모금과 지출에 있어 투명성과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미국=대통령선거 때에만 직접적인 국고보조가 이뤄지며, 정당이 아닌 후보자 개인에게 지원된다. 가장 큰 특징은 '매칭 펀드 시스템'이 적용된다는 점.

즉 예비선거 때 20개 이상의 주에서 각각 5천달러 이상 모금한 후보에게만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국고가 지원된다. 개인 기부는 2백50달러까지만 매칭 펀드 적용 대상으로 인정되며 기업이나 단체 기부는 아예 제외된다. 보조금에 대해서는 사후에 연방선거위원회가 지출 내역을 엄격히 심사, 위법행위를 가려낸다.

미국의 정치자금 투명화에는 '커먼 코즈' 등 유권자운동단체의 활약이 절대적으로 공헌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미국 정치자금제도의 난맥상으로 꼽히던 '소프트 머니'(정당과 정치후원회에 기부되는 정치자금)제도를 집중 추궁, 결국 지난달 규제법안을 최종 입법화하는 개가를 올렸다.

◇유럽=독일은 1959년 유럽 최초로 정당 국고보조금 제도를 도입한 뒤 숱한 시행착오 끝에 94년 정당법을 개정, '매칭 펀드'개념을 도입했다. 각 당이 자체 모금한 총액에 비례하는 만큼만 국고를 보조하는 이 제도는 이후 독일 정당의 대중적 자생력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영국은 최근 선거비용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정치자금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2000년 정당의 자금지출 제한은 풀되 20파운드(약 3만7천원) 이상의 모든 지출을 영수증 처리토록 하는 등 지출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부정책의 기조를 바꿨다. 이탈리아는 정당의 엉터리 회계보고와 정치지도자들의 잇따른 뇌물 스캔들 등으로 '뇌물공화국'이란 오명을 듣게 되자 93년 국민투표까지 하면서 국고보조금 제도를 전면 개편했지만 부패의 여진(餘震)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일본=전통적으로 몇몇 유력 의원의 자금 동원력에 의존해온 일본도 파벌중심 정치의 폐해를 막기 위해 94년 정당조성법을 제정, 국가가 정당에 직접 교부금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99년엔 정치자금법을 개정해 기업이나 각종 이익단체가 정치인 개인에게 헌금하는 것을 일절 금지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정당의 지부를 세우고 기업으로부터 헌금을 받는 등 법의 맹점을 악용하는 사례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엄격한 감시와 처벌이 두드러진다. 여기엔 도쿄(東京)지검 특수부로 상징되는 일본 검찰의 정치적 독립도 한몫하고 있다.

◇도움말 주신 분=강원택 숭실대 교수·권호순 민주당 후원회 사무총장·김근태 민주당 고문·김민전 경희대 교수·김박태식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박상병 민주당 정개특위 정책연구위원·박희태 한나라당 최고위원·안병도 중앙선관위 공보과장·허태열 한나라당 의원·하승창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이상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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