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포럼

차라리 갈라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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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요즘 여야의 의원총회 같은 곳에선 "이게 당이냐"는 푸념과 "그럴 바엔 저쪽 당으로 가라"는 고함이 수시로 터져나온다. 일회성 발언으로 넘기기엔 표정이나 어조가 심상찮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처음엔 불만 표시 정도였지만 이젠 얼굴 맞대기조차 싫어할 정도로 번졌다. 같은 당에 몸담고 있는 의원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고, 어쩌다 의원회관이나 의사당 복도에서 마주치면 소 닭 보듯 지나간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모두 그렇다.

적(敵)보다는 노선을 달리하는 동료가 더 밉다고 했던가. 이쯤 되면 굳이 같은 당에 있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진다. 차라리 갈라서라고 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새해 벽두부터 덕담은 못할망정 웬 악담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누구 좋으라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쌍심지를 켤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헷갈리게 할 바엔 딴살림을 차리고 사안에 따라 연대를 모색하는 게 국민에게는 나을 것 같아 하는 얘기다.

우선 당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시각이 정반대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은지 오래됐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어느 당도 지지율 30%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데 그 원인에 대한 분석도 판이하다. 강경파는 "과반수 의석을 준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개혁입법을 밀어붙이지 못하는 바람에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 온건파는 "개혁지상주의에 사로잡힌 강경파에 휘둘려 우왕좌왕하기 때문에 실망한 중도성향의 국민이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시각의 차이가 정책 사안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아무리 설득해도 이라크 파병 동의안엔 끝까지 반대하고, 당정이 기업의 과거 분식회계에 대한 집단소송을 2년 유예키로 결정해도 여당의 법사위원들이 부결시킨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관철하려고 여당의원들이 국회에서 농성하고 여야 원내대표의 보안법 절충안도 의총에서 뒤집어버린다. 사사건건 부딪치다 보니 감정도 많이 상했다.

한나라당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정은 비슷하다. '진정한 보수'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렸다는 지적엔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이를 벗어날 방법론에선 확연히 다르다. "안보에 관한 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쪽과 "시대의 변화에 맞춰 중도를 향해 성큼 다가서야 한다"는 쪽으로 갈려 있다. 서로 "여당에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는 철부지" "기득권에 연연해 홍수에 집 떠내려 가는 것도 모르는 수구"라고 비난한다.

어느 쪽이 바른 길인가. 몇 가지 시사점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20%대로 추락했던 지지도가 외국 순방과 자이툰 부대 방문 등 전통적 의미의 대통령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게 여당의 참고사항이다. 한나라당 지지도가 한때 마의 30% 벽을 넘어선 것은 4.15 총선 직후 변화의 조짐을 보일 때였다는 게 지침이 될 수 있다. 여당이 국정의 중심을 잡으면, 야당이 체질 개선을 한다면 지지율이 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진심이 담기면 국민은 금방 느낀다.

올해 두 차례 의원 보궐선거와 내년의 지방선거, 2007년의 대선과 2008년의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역대로 큰 선거는 양식 있는 5%의 중간층.중도층의 향방에 따라 좌우됐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의 마음이 민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답은 나와 있다. '국민을 덜 불안하게 하는 진보''개혁을 두려워하지 않는 보수'여야 한다. 이를 이끌 세력이 각 당을 주도하는 게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러지 못할 바엔 차라리 갈라서는 게 정당에도 국민에게도 낫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