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美경제 못믿겠다" 시장 불안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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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주가가 폭락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미국 증시의 추락 원인과 전망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대응책 등을 세차례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

뉴욕 주가가 9·11테러 사태 때의 수준마저 깨고 내려간 지난 주말 세계 각국의 주식투자자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심지어 1929년 대공황 때와 증시 주변 상황이 비슷하다는 소리까지 나도는 가운데 많은 투자자가 거듭되는 주가 하락을 견디지 못한 채 일단 주식을 팔고 보자는 투매 대열에 섰다.

연초와 비교해 이제껏 나스닥지수가 32.4%나 폭락했고, S&P500지수와 다우지수는 각각 26.2%와 20.1% 곤두박질했다. 이런 추세라면 미 증시는 41년 이후 60여년 만에 처음으로 3년 연속 하락이란 고통의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폭락의 파도는 미국을 넘어 세계 각국 증시를 덮치고 있다. 지난 주말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각국 증시는 5% 안팎씩 동반 급락했다.

금융시장의 급속한 위축은 실물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적잖은 경제전문가들이 미국 경제의 더블딥(반짝 회복 뒤의 재침체)을 기정 사실화하는 가운데 어렵사리 회복 국면으로 들어선 아시아와 유럽 각국 경기도 둔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신뢰의 상실=미국의 경기지표와 기업실적치들만 봐서는 주가폭락을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미국 경제는 올 1분기 중 6%선의 높은 성장을 달성했고,2분기에 속도가 떨어지긴 해도 3%에 가까운 성장을 이어갈 것이란 예측이다.

문제는 투자자들 사이에 "아무것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이 갈수록 팽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엔론에서 출발해 월드컴과 AOL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은 회계부정은 시장을 '신뢰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회계부정이란 악(惡)을 척결하겠다"고 나섰지만, 그마저 과거 기업인 시절 회계부정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경제 대통령으로 통하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의 말조차 시장은 외면하고 있다. 그는 지난주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은 튼튼하며 경기는 회복 중"이라고 강조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대공황과 닮은꼴?=미국 경제가 90년대 10년 대호황을 만끽하며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은 데 따른 어쩔 수 없는 후유증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 증시는 90년대 10년간 5배 이상 주가가 급등했다. 돈의 힘으로 주가를 밀어올리며 거품을 계속 부풀렸다는 지적이다. S&P500종목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2차 세계대전 이후 90년까지 평균 17배 수준이었지만, 현재 40배에 달하고 있다. PER가 높을수록 실적에 비해 주가가 고평가돼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과거 29년 대공황 전후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한다. 20년대 미국은 비행기와 자동차·전기 등 신기술을 바탕으로 10년 대호황을 누렸고 주가도 6배 가량이나 올랐다. 하지만 과잉생산과 금융거품은 결국 공황으로 이어졌다. 이와 흡사하게 90년대의 미국은 정보기술(IT)을 앞세운 대호황을 누렸고, 국민의 50%가 주식에 투자하는 '국민 주식투자의 시대'를 열었다.

◇바닥은 어디인가=미 증시의 하락세는 더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모건 스탠리의 유명 투자전략가인 바톤 빅스는 지난 주말 "주식과 채권에 거품이 여전하다"며 "어딘가 투자하려면 금을 사라"고 조언했다.

키움닷컴증권 안동원 상무는 "대호황의 후유증과 회계부정에 따른 불신을 해소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며 "최근 미 주식형펀드에서 9주 연속 자금이 빠져나간 데서 알 수 있듯이 기회를 봐서 팔겠다는 투자자들만 눈에 띄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CBS마켓워치가 지난 주말 투자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들이 답한 다우지수의 바닥치는 평균 7,000~7,500으로 나타난 가운데 6,500 밑으로 떨어질 것이란 응답도 30%에 달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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