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공무원 1호' 유종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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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직장인이 꿈꾸는 재택(在)근무-. 서울시 정보화개발담당관실 전산서기보 유종선(柳鍾善·31)씨는 1주일에 사흘은 시청으로 출근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근무한다. 씨는 전자정부법 시행에 따라 서울시가 공공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 5월 27일부터 시범 실시한 34명의 재택근무자 가운데 한 명이다. 씨의 생활을 따라가 본다.

따르르릉-.

19일 구로구 개봉동에 사는 柳씨는 자명종의 버튼을 오전 7시30분에 눌렀다. 전철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시청으로 출근하는 날에는 6시45분 쯤에 일어나지만 재택근무 때에는 45분간 아침잠을 더 즐긴다.

대충 씻고 아침을 먹고나면 8시.곧바로 노트북 PC를 부팅하고 '근무'에 들어간다. 지문인식시스템에 손가락을 대고 시청 서버에 접속했다. 이 노트북은 간혹 자리를 비워 다시 접속하려면 지문을 새로 인식시켜야할 만큼 보안에 철저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면 씨는 창문 밖의 화분을 손질한다. 그는 "시청 복도에서 줄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마음이 훨씬 빨리 가라앉는다"고 말했다. 요즘엔 신문을 뒤적이는 시간도 줄었다. 사무실에선 집중력을 발휘하는 시간이 2~3시간에 불과했으나 집에서는 4시간 이상도 가능하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약간 불편한 씨는 간부들의 재택근무 권유를 받고 처음에는 머뭇거렸다. 얼굴을 맞대고 일해야 '일꾼'으로 인정받는 풍토에서 선뜻 손을 들고 나서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50여일을 지내보니 부쩍 신청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부서 직원들도 부러워하는 눈치다.

그는 연로한 부모님과 점심상에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는 것도 재택근무의 줄거움으로 꼽는다. 씨는 "사무실에선 마지못해 일하는 기분이지만 재택근무 때는 아무리 복잡한 일도 취미생활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재택근무 이후 야근수당은 오히려 늘어났다. 근무시간 끝났다고 하던 일을 중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씨는 "요즘 하루 평균 3시간의 야근수당을 더 받지만 업무처리량은 두배 가량 늘어났다"고 말했다.

대신 부서 회식이나 결혼·장례식에는 빠짐없이 참여한다. 사무실에 출근할 때는 일부러 궂은 일을 도맡는다. 씨는 "떨어져 있을수록 동료들이 그립고 정은 더 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씨는 개발직의 경우 밤시간에 집중력이 높아지는 만큼 근무시간도 융통성있게 배분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동절기)나 6시까지 근무해야 한다는 공무원 복무규정은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다.

柳씨와 같은 재택근무자를 위해 서울시가 투자한 예산은 노트북 구입과 통신선 구축에 든 5천만원. 시는 재택근무 자원자가 쇄도함에 따라 정보화개발담당관·법무담당관·소비자보호과·세무운영과·장애인복지과 등 시범 부서 외에 다른 부서로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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