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투자 걸림돌은 여전히 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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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외국 기업들은 월드컵 이후 한국 경제 상황이 더 좋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 동안의 투자 성과에 대해서도 만족하는 편이다.

그래서 하반기에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고, 신입 사원 채용도 늘릴 계획이다.

중앙일보 경제연구소가 주한 외국기업 43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외국 기업들은 한국의 투자환경이 빠른 속도로 좋아지고 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하지만 '하투(夏鬪)'로 불리는 최근의 노사관계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는데다 여전히 많은 규제와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투자의 걸림돌로 여기고 있다.

특히 한국을 매력적인 투자국가로 치면서도 '가장 매력적인 나라'로는 절반 이상의 외국 기업이 중국을 꼽고 있어 꾸준히 투자환경을 개선해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투자 더 늘리겠다=조사대상 기업 중 절반이 넘는 25곳(58.1%)이 올 하반기 중 신규 사업에 진출하거나 기존 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한국 내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응답했다.

직원을 새로 채용하겠다는 기업도 22곳(51.3%)에 이르렀다.

이 중 6곳은 하반기에 11명 이상의 직원을 새로 뽑을 계획이다.

매출이 늘고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는 등 사업실적이 좋아진 외국 기업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조사대상 기업의 3분의 2(29곳)가 지금까지 한국에 투자해 올린 성과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만족하지 않는다는 기업은 10곳(23.3%)이었다.

지난해 말 실시한 1차 조사(본지 2001년 12월 25일 1, 3면)에선 55.8%가 올 상반기에 투자를 늘리겠다고 응답했었다. 2차 조사에서 실제로 투자를 늘린 기업은 44.2%로 집계됐다.

계획한 대로 투자를 늘리지 못한 이유에 대해 관련 기업들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본사의 투자방침 변화 등을 들었다.

한편 한국에서 외국 기업이 투자해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유망사업 분야에 대해 21곳(48.8%)이 금융·보험업을 꼽았다.

그 다음으로 정보통신업(15곳)·유통업(5곳)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한국, 투자하고 싶은 나라 2위=지난해 말 1차 조사에서 외국 기업들은 불편한 투자환경으로 노사관계와 지나친 규제에 이어 한국 국민의 배타적 정서를 꼽았었다.

6개월 뒤 실시한 이번 조사에선 배타적 국민정서가 가장 두드러지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받았다.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계기로 한국 국민들의 자신감이 높아진 것과 동시에 외국인과 외국 기업에 대한 배타적 감정이 크게 약해졌다. 특히 거스 히딩크 축구대표팀 감독이 외국인도 한국에 기여할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를 보였다."(태미 오버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부회장).

반면 각종 규제는 여전히 가장 불만스런 분야로 꼽혔다. 이어 노사관계와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뒤를 이었다.

특히 1차 조사와 마찬가지로 공무원은 대한(對韓) 투자를 가로막는 1순위 집단으로 꼽혔다.

투자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한 집단을 묻는 질문에 18개 기업(33.3%)이 공무원을 지적했고 한국 기업인·노동자라는 응답이 각각 13곳(24.1%)이었다(복수응답).

1차 조사(전체의 3분의 1)보다 비중이 낮아지긴 했지만 공무원으로부터 뇌물이나 리베이트·상납(bribes or kickbacks)을 요구받은 기업이 4분의 1(11곳)에 이르렀다. 특히 이 중 두곳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고 응답했다.

이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외국 기업들은 큰 내수시장(22곳)·높은 경제성장률(18곳)·우수한 인력(14곳)에 이끌려 한국에 투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복수응답).

한편 투자 대상국으로서 매력을 묻는 질문에 한국은 중국(55.8%)에 이어 2위(14.0%)를 차지했다.

1차 조사와 순위는 같은데 1,2위간 격차는 더 벌어졌다. 1차 조사에서 1위 중국은 34%, 2위 한국은 18.9%의 응답을 얻었었다.

◇월드컵·선거 등 호재로 작용할 것=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외국 기업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절반이 넘는 22곳(51.2%)이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위기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응답했다.

특히 월드컵 효과가 한국 경제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많은 기업들이 월드컵 개최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개선됐고(88.4%), 이로 인해 앞으로 외국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며(55.8%),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83.7%)이라고 예상했다.

월드컵 기간 중 한국 정부가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연 서울투자포럼 등 투자촉진 행사에 대해서도 효과적이었다는 반응(39.5%)이 많았다. 별 효과가 없었다는 응답은 20.9%였다.

국내 전문가들은 잇따른 선거가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본다.

이와는 달리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경기 활성화 등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한 외국 기업이 각각 11곳(25.6%), 18곳(41.9%)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 기업(각각 9곳)보다 많았다.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에 대해선 19개 기업(44.2%)이 5~6%, 10곳(23.3%)은 6%가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신예리 경제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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