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지상주의 버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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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방송사에 갓 입사한 PD들은 궁금한 게 많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선배에게 묻는다."매니저들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합니까." 대답이 쉽지 않다."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다시 물을 줄 알고 던진 답이다."어느 정도가 적당합니까.""불가근 불가원(可近可遠)이니라." 선문답을 지켜보던 다른 PD가 웃으며 한마디 끼어 든다."너무 알려고 하지마. 다쳐."

연예권력 소수독점 폐해

경험적으로 이야기하면 연예프로그램 제작자들과 매니저(연예기획사) 사이의 관계는 너무 가까워서도 너무 멀어서도 안된다. 멀리 해서는 애초에 제작을 하기 어렵고 너무 가까이 해서는 유착의 위험이 있다. 매니저와 PD는 서로의 목표가 다르다. 달라야 한다. 연예기획자의 조준점은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익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들은 곧바로 닻을 내린다. 이에 반해 PD는 대중의 정서를 위로하고 고양시키는 게 목표다. 그들은 전파를 일시적으로 위임받은 사람이고 전파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질적 이익을 내려는 사람과 사명감을 지녀야 할 PD가 동업자 사이가 될 수는 없다. 거친 비유로 수퍼마켓에 물건을 대주는 사람과 가게주인을 예로 들어보자. 대중이 선호할 만한 물건을 꾸준히 공급해온 유통업자에게 상인은 신뢰가 갈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업자가 의심 가는 새 물건을 공급하며 고객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달라고 강하게 '부탁'한다면 그동안 사이좋게 지내던 상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더구나 만약 새 물건을 받아주지 않으면 기존의 잘 나가는 물건(스타)의 공급까지 중단하겠다고 은근히 협박(?)한다면. 이 상인의 딜레마가 오늘날 연예오락 담당 PD의 고민과 비슷하다. 연예인이 물건은 아니지만 그 수요와 공급의 통로는 사뭇 닮았다. 자신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도움이 될 만한 인재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면 당연히 PD는 그 연예기획자에게 우호적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발굴한 지망생을 그 PD가 스타로 키울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판단하면 매니저 또한 미소를 머금고 접근할 것이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형국이다. 이런 이용이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으로 나가면 소수의 '실력자'들에게 연예권력이 독점되는 폐해를 낳는다.

독점은 좋지 않다. 어찌 보면 이것 역시 일종의 권력형 비리다.소수의 특권층이 나눠먹기 식으로 연예시장을 교란한 것이다. 자신의 두 아들이 구속되자 대통령이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토로했다. 친인척 관리하는 법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방송사는 튼튼하게 짜여진 조직이다. 문제의 PD 위에도 그를 주시해야 하는 직책들이 없지 않다. 그들은 말한다. 그 PD만큼 섭외 잘하는 PD가 없었다고. 잘 나갈 땐 수수방관하다가 사건이 터지면 고개 숙이는 일은 이쯤에서 멈추자.

농사를 잘 지으려면 때맞춰 모내기도 해야 하고 김매기도 해야 한다. 논에도 우량볍씨가 있으면 한쪽에 잡초도 있듯이 어느 집단이나 10% 정도는 군자에 가깝고 10% 정도는 도둑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느 집단에서 도둑이 나왔다고 모두를 도둑 취급하는 일은 온당하지 않다. 그러나 도둑이 자랄 만한 분위기만큼은 바로잡아야 한다.

명예 아는 PD 대접해야

결국은 스타 의존도가 문제고, 더 파헤치면 시청률 지상주의가 문제다. 방송사 경영진은 제발 가만히 있다가 문제가 터지면 그때 가서 고뇌의 표정을 연출하지 말고 미리미리 태풍에 대비하기 바란다. 일단 방파제(도덕적 해이를 막는)를 충분히 쌓고 꾸준히 파랑주의보를 발동하라. 일부의 나무만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독과점을 방치하지 마라. 다양한 묘목이 자랄 수 있도록 배려하라. 시청률 잘 나오는 프로그램 PD만 칭찬하지 말고 명예를 존중하며 대중에게 꼭 필요한 산소 같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에도 신경 좀 써라. 그리고 무엇보다 불감증 환자가 생기지 않도록 직원들의 정신건강에도 유념하라. 안전불감증이 실종을 낳고 도덕불감증이 구속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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