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푸는 쾌감에 과학책 읽는 재미 솔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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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과학 분야의 책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미해결의 수수께끼가 풀리는 현장을 만나는 데 있다. 일전에 경험한 즐거움으로는 수학에서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즈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이야기가 우선 떠오른다. 3백년 동안 미해결이던 문제를 풀어나간 과정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사이먼 싱 지음·영림카디널)에 잘 나타나 있다. 중·고교 시절 수학실력과 상관없이 페르마의 정리가 왜 중요한 사안이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를 재미있게 따라가 볼 수 있는 단행본이었다.

최근에는 화학·생물학 분야 최대의 수수께끼로 꼽히는 '생명의 기원'문제가 풀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구는 45억년 전에 생성됐고 최초의 생명은 그로부터 5억년쯤 뒤에 생겨났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돌과 흙, 가스와 물밖에 없던 지구에서 어떻게 생명이 나타났을까. 우리도 학창시절에 유리-밀러 실험이라는 것을 배우긴 했다. 몇가지 가스와 물을 넣고 전기방전을 시켰더니 생명체의 재료인 유기물이 생겼다는 실험말이다. 재료가 있으니 운만 좋으면 완성품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이 반복돼 재료가 완성품으로 바뀔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 "쓰레기장에 오랫동안 햇빛이 비치고 바람이 불어 쓰레기가 분해·재조직·결합돼 보잉 747 항공기가 생길 확률이나 같다"고 한다. 확률은 거의 제로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로버트 샤피로의 『닭이냐 달걀이냐』(책세상),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민음사) 등의 진화론 해설서들을 봐도 생명의 기원 문제가 난제 중의 난제임을 알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생명의 탄생이 필연적인 것이라면? 그렇다고 주장하는 유력한 이론이 등장했다. 최근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복잡계 이론이다. "북경의 나비 한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에서 폭풍이 일어난다"는 카오스 이론이 확장, 발전된 것이다. 존 홀런드의 『숨겨진 질서』(사이언스 북스)는 겉보기에 혼돈스러운 체계의 상당수가 엄연한 규칙과 질서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복잡계 이론은 생명의 탄생에 대해 "거의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5월 출간된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혼돈의 가장자리』(사인언스 북스)가 대표적인 저서다. 그는 복잡계가 질서와 카오스의 경계영역, 즉, 혼돈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다고 설명한다. 화학물질들이 몇가지 규칙에 따라 상호 반응을 계속하는 복잡계에서는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자가촉매 반응망이 나타난다는 것, 생명은 점진적으로 조립된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거쳐 갑자기 총체적으로 등장했을 것이라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이것이 복잡계의 일반적 속성임을 저자는 수학과 화학,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동원하며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여기에서 곧바로 한가지 사실이 유추된다. 우주에는 생명체, 나아가 고도의 지능을 가진 외계인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행성은 엄청나게 많으니까. 어쨌거나 좋은 해설서들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러 학설의 근거와 장단점을 비판적으로 해설하면서 자기 주장을 편다. 이같은 사고 과정을 따라가는 지적 모험은 과학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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