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기업들이 자사상품 못 사게하는 '디마케팅' 이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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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그리스의 아킬레우스란 사람은 발이 빠르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제논이란 철학자는 아킬레우스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할 때 출발선을 달리하면 아킬레우스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제논의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역설'입니다.

예를 들어 아킬레우스가 초속 100m로 달리고 거북이는 초속 10m로 기어간다고 가정하죠. 이때 거북이를 10m 앞에서 출발시킵니다. 그러면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아킬레우스가 10m 갔을 때 거북이는 1m를 앞서갑니다. 아킬레우스가 1m를 가면 거북이는 0.1m, 아킬레우스가 0.1m 가면 거북이는 0.01m 더 앞서갑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제칠 수 없다는 겁니다.

역설이란 일반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것에 반대되는 의견이나 말을 뜻합니다. 언뜻 보면 상식에 어긋나거나 논리적으로 모순에 빠져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상징적으로 진리를 암시하기 위한 표현법이기도 합니다. 시장에서도 이런 역설적인 수법이 이용됩니다. 기업은 상품을 팔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합니다. 이런 노력을 통틀어 마케팅이라고 하죠. 손님을 한명이라도 더 끌어 오려는 게 정상적인 마케팅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손님을 떨어내기 위해 애쓰는 예도 있습니다. 이렇게 회사가 자기 상품을 사지 않도록 권유하는 것을 역마케팅 또는 디마케팅(demarketing)이라고 합니다. 디마케팅은 영어로 '줄이다'는 디크리스(decrease)와 마케팅의 합성어입니다.

원래는 기업이 원하지 않을 정도로 수요가 너무 많이 몰릴 경우 수요를 줄이기 위한 자구책이죠. 전력회사가 여름 성수기 때 절전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쉬운 예입니다.

그런데 이런 역마케팅도 있습니다. 술 회사인 디아지오코리아는 지난 28일부터 시민단체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과 함께 '쿨드라이버'라는 음주운전 예방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술집이 많은 서울 강남의 번화가에다 진을 치고 '술을 마시면 차를 운전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서명을 하면 휴대전화 클리너를 선물로 줍니다. 술 회사가 소비자들에게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을 떨어뜨리도록 하는 셈이죠.

이런 술 회사의 캠페인은 역마케팅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공익형에 속합니다.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거나 소비자의 건강을 해치는 상품을 만드는 기업에는 정부나 사회의 감시와 규제가 따르죠. 얼마 전까지 이런 회사들은 감시와 규제를 피하는 데 급급했었죠. 만일 잘못한 게 발각이 되면 정부로부터 벌을 받고 소비자단체의 불매운동으로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아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식으로 자발적으로 공익 캠페인을 하는 회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프랑스 맥도널드가 대표적입니다. 이 회사는 2002년 '맥도널드 햄버거는 주 1회 먹는 식품으로 적당하다'는 광고를 냈습니다. 광고가 나가자 미국 본사와 맥도널드 반대자들까지 깜짝 놀랐죠. 맥도널드 본사의 입장에선 소비자들이 매주 대여섯 개의 햄버거를 먹어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적게 먹으라는 광고를 내다니요.

그렇지만 아주 교묘한 노림수가 광고 뒤에 숨어 있었답니다. 우선 이 광고로 프랑스 맥도널드는 프랑스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원래 프랑스인들은 햄버거가 살을 찌게 하며 건강에 안 좋다는 이유로 맥도널드 불매운동이 활발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둘째로 프랑스 맥도널드는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줬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광고는 일주일에 한 번은 햄버거도 괜찮은 음식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적극적으로 햄버거를 먹으라는 뜻으로도 해석됐습니다. 이후 프랑스 맥도널드는 유럽 지사 중 최고의 영업 실적을 올려 미국 본사를 또 놀라게 했습니다.

BAT란 영국계 담배회사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청소년 금연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금연과 건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최근 청소년 흡연이 사회 문제로 대두하자 발 빠르게 행동에 나선 것이죠.

역마케팅이 매번 효과를 거두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의 비난을 피하려는 임시방편이라고 몰매를 맞을 경우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마케팅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요즘은 소비자들이 워낙 현명해져 과연 진실한 역마케팅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눈가림인지를 척 보면 알기 때문이죠.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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