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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 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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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어의 자식 사랑은 지극하다. 후손을 잇기 위해 딱 한 번 사랑을 나누고 3~4년의 짧은 삶을 마친다. 짝짓기를 한 암놈은 수천~수만 개의 알을 낳은 뒤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며 알을 노리는 적들을 물리치다 힘을 잃고 숨을 거둔다. 수컷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쇠약해져 죽는다.

그래서 우리 조상은 문어(文魚)란 이름에 ‘글월 문(文)’ 자를 달아줬다. ‘글 좀 읊을 줄 아는, 즉 양식 있는 물고기’라는 뜻이리라. 큼직한 머리는 두뇌를 상징하고, 위협을 느낄 때 내뿜는 먹물을 탄소 가루 성분의 붓글씨용 먹물과 연관 지었을 수도 있다. 중국에서 장위(章魚)라고 부르는 문어는 우리의 고유한 작명이다. 제사상에 문어를 올려 부모를 공경하려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유교문화의 본고장인 안동 지방에선 불천위(不遷位) 제사(4대를 넘겨도 후손 대대로 제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의 제물로 올리는 탕(湯)·포(脯)·적(炙)에 문어를 꼭 쓴다.

서양에서는 문어의 발 8개를 의미하는 ‘oct(8)’에서 따와 그저 Octopus로 부른다. 근래 들어서야 문어의 영특함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문어가 장·단기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며,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 해결을 익힌다고 한다. 심지어 장난을 칠 정도로 영리하다고 미국·캐나다 학자들은 1988년 과학잡지 ‘디스커버(Discover)’에서 주장했다.

스페인의 우승으로 끝난 남아공 월드컵에서 ‘도사(道士) 문어’ 파울이 최대 스타로 떠올랐다. 독일의 한 수족관에 사는 파울은 독일의 예선전부터 결승전까지 모두 8경기에서 승리 팀을 ‘점지’하는 신기를 발휘했다. 확률로 계산하면 256분의 1로 0.39%에 불과하다. 어느 도박전문가도 따라올 수 없는 신통력이었다. 언론들은 ‘문어 신탁’ 장면을 생중계하고, ‘학습효과’라는 등 예지력의 비밀을 캐느라 법석을 떨고 있다. 생후 2년7개월 된 파울의 생물학적 수명이 다하고 있어 4년 뒤 브라질 월드컵에서 그의 점괘를 보기는 어렵다. 그의 초능력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엔 역부족이어서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공산이 크다.

오래전에 문어의 능력을 간파한 우리 조상의 혜안이 새삼 존경스럽다. 스페인에선 올리브 오일을 뿌린 삶은 문어 요리, 풀포(pulpo)가 유명하다. 우리의 문어 찜과 거의 비슷한 게 일품이다. 혹시 스페인 팀이 문어를 먹고 머리가 좋아져 ‘예술 패스’로 우승을 일궈냈던 건 아닐까.

고대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