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두 개의 빈 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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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유진 기유빅(1907~97) '두 개의 빈 병' 전문

헛간의 한구석에

두 개의 빈 병.

바람은 기와 지붕과

사방의 벽을 흔들고 있다.

지구의 중심이 끌어당기고

빛이 붙잡고 있는

두 개의 초록색 병



허공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지구의 인력과 태양의 빛, 산소, 온도, 습도, 먼지, 온갖 생명들이 숨쉬는 기운 따위로 가득 차 있다. 허공은 이 모든 것의 팽팽하고 고요한 균형이다. 그 균형 위에 시인은 초록색 병 두 개를 가만히 올려놓는다. 그 병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헛간 구석에 조용히 서 있다.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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