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회견정치권방응]"盧후보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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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와대 비서진들은 4일 노무현 후보의 '중립내각 요구 기자회견'에 일제히 불만을 표시했다.

박선숙(朴仙淑)대변인은 "유감스럽다"고 했고, 조순용(趙淳容)정무수석은 "초헌법적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국무총리, 법무부·행자부 장관을 구체적으로 지목해 개각 대상으로 거론한 것과 한나라당의 추천을 받으라고 방법까지 제시한 데 대해 "도대체 후보가 왜 저러는 거냐"고 했다.

청와대측은 특히 개각이라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건드리면서 "사전 협의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사전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조율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趙수석은 "옛날 6·29식 선언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펄쩍 뛰었다.

1987년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泰愚)대통령후보는 전두환(全斗煥)대통령과 사전 협의에 따라 야당의 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독자적 결단을 하는 모양새로 '정치적 반전'을 시도했었다.

후보를 띄우기 위해 全대통령과 갈등을 빚는 모습까지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4일 후보측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청와대와 사전 의사소통이 전혀 없었던 것 같지는 않다.

최소한 회견 1~2시간 전에 후보의 정동채(鄭東采)비서실장이 청와대 박지원(朴智元)비서실장에게 회견 사실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朴실장이 사전에 전달된 후보측의 회견내용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의 불쾌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金대통령은 결국 후보의 요구사항을 상당 부분 받아들일 것 같다.

金대통령은 진작부터 ▶민심수습 개각▶김홍일(金弘一)의원의 거취▶아태재단 정리 문제 등을 생각해 왔고, 시기 선택만 남겨 놓은 상태였다. 여기에 서해교전 사태, 8·8 재·보선 출마 장관의 보각 등도 개각 요인으로 겹쳐 있다.

때문에 金대통령이 후보에게 자신을 넘도록 배려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 가능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최근 '노풍(風·노무현 지지바람)'이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연루 혐의 때문에 급격히 추락했다는 사실이 金대통령에겐 상당한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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