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타율 4할… 부진 주요인 AL 지명타자제 부적응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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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리그를 옮긴 뒤 부진에 빠진 박찬호(29·텍사스 레인저스·사진)의 '아킬레스건'이 9번타자 자리에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메리칸의 지명타자 제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당초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1996년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 지난해까지 6년을 내셔널리그에서 뛰다 올해 아메리칸리그로 옮긴 박찬호는 하위타선에 유난히 약해졌다.

<표 참조>

타순별 상대타율에서 9번타자에게 무려 4할의 피안타율을 보이고 있는 데서 드러나듯 '9번타자의 함정'에 너무 자주 빠지고 있다.

박찬호는 지난 5월 19일(한국시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 9번타자 라몬 오티스에게 3타수 3안타를 허용했고 지난달 29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는 승부의 고비가 된 6회초 2사 2,3루의 위기에서 9번타자 브래드 애스머스에게 2루타를 맞고 역전을 허용했다. 리그를 옮기기 전 최근 3년 동안 9번타자에게 0.161의 피안타율을 보이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박찬호가 속한 아메리칸리그에는 지명타자 제도가 있다. 투수는 타격하지 않는다. 내셔널리그에서는 투수도 타격을 한다. 그 타순이 9번이다. 올해 박찬호가 8,9번타자에게 유난히 약점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는 6년 동안 9번타순에서 투수를 상대했던 박찬호가 리그를 옮겨 9번타순에서 투수가 아닌 타자를 상대하면서도 그 차이에 대한 공략법을 체질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셔널리그의 경우 8번타자는 자신의 뒤에 타격이 약한 투수가 등장하기 때문에 자신이 해결하려고 덤벼드는 타격을 한다. 이 때문에 유인구에도 말려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메리칸리그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8번타자보다 9번타자가 더 강하다.8번타자는 유인구에 서두르기보다 볼카운트를 될 수 있으면 길게 끌고 간다. 정면 승부보다는 유인구 승부를 즐기는 박찬호가 하위타선을 상대로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말려드는 경우가 많다.

박찬호가 상대팀 타선을 타순에 맞춰 효율적으로 공략하려면 하위타선에서 초구부터 승부구를 던지는 공격적인 투구패턴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의 구위에 자신감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한편 레인저스는 오는 5일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할 예정이었던 박찬호가 6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 등판한다고 발표했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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