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리 357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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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비록 경기장에는 갈 수 없지만 국민과 함께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지난 주말 북한 함정의 공격을 받고 서해상에서 산화한 윤영하(尹永夏)소령이 남긴 말이다. 지난달 14일 포르투갈전 당시 고속정 참수리 357호 정장 尹소령과 대원들은 한 방송사의 보도를 통해 열렬한 함상응원을 선보였다. 박지성 선수의 결승골에 배가 떠나갈 듯 환호하던 이들은 불과 보름 후 우리 영해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 했다.

살아남은 대원들이 전하는 참수리 357호의 최후는 장렬했다. 북한 함정이 이들을 정조준하고 접근했을 때 이미 희생은 예고된 것이었다. 그러나 357호 27명의 대원들은 전우가 쓰러지고 실탄은 떨어져 마침내 배가 가라앉는 순간까지 대한민국 해군답게 투혼을 불살랐다. 이들이 치른 30여분간의 교전은 암살당한 35대 미국대통령 존 F 케네디의 해군시절을 연상케하는 것이었다.

1943년 8월 2일 새벽 미 해군 어뢰정 PT109호 함장인 케네디 중위는 남태평양 솔로몬군도 근처 해협에서 일본 구축함 공격에 나섰다가 적함에 부딪혀 배가 두동강 나는 위기를 맞았다. 대원 두명이 죽고 11명이 살아남았다. 케네디는 부상당한 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부하들을 구출해냈다. 생환한 케네디는 전쟁영웅이 됐으며, 제대 후 정치인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는 훗날 어떻게 전쟁영웅이 됐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 본의가 아니었어. 일본군이 내 배를 침몰시키는 바람에 그렇게 됐을 뿐이야."

참수리 357호 대원들도 케네디 못지않은 영웅이다. 그들 역시 본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도 지난 한달간 태극전사들의 선전에 열광했고, 거리를 뒤덮었던 붉은 물결에 합류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군인인 그들은 우리가 마지막 거리응원을 준비하던 시간에 영해를 지키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357호를 비겁하게 공격한 북한만이 그들을 영웅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들을 무방비 상태로 적 앞에 노출시킨 이상한 '교전규칙'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다.

지난해 9·11테러 이후 애국주의가 고조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올들어 케네디의 PT109호 선체 인양작업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유명한 타이타닉호를 찾아낸 탐사전문가들이 해군과 함께 바닷속을 뒤지고 있다. 우리 군도 연평도 근해에 가라앉아 있을 참수리 357호를 반드시 인양해주기 바란다. 맨몸으로 바다를 지킨 27명의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다시는 이런 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해.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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