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자기모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최근에 중국이 우리를 크게 실망시키고 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우선 우리는 탈북자 문제의 처리과정에서 중국이 북한을 의식한 비인도적 강경 입장과 국제 여론을 의식한 인도적 온건 입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을 보았다. 결국은 한국 공관에 진입한 탈북자들까지도 본인들의 희망대로 한국으로 왔지만 중국은 처음부터 일관된 원칙도, 명확한 목적도 없이 행동함으로써 북한과 국제사회를 모두 실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도하는 중국 언론의 자세도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처음에는 중국 언론들도 한국과 한국 국민의 역할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보도했는데 한국 팀이 유럽의 강팀들을 누르고 승리를 거듭하자 중국 언론들은 일제히 아무런 근거도 없이 심판 음모론을 거론하면서 한국을 극히 부정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론 서방 언론들의 보도와는 매우 대조적인 것이었다. 서방 언론들은 심판들의 오심문제를 제기하면서도 한국 팀의 승리는 정당하고 경이로운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반해 중국 언론들은 한국 팀의 승리를 부인하려는 악의에 찬 프로파간다라는 인상을 준다.

이처럼 중국이 탈북자 문제에 있어서나 월드컵 보도에 있어 성숙한 대국으로서의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우리를 크게 실망시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금 중국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중대한 모순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중국의 '모순'이란 중국의 경제와 정치가 상호 모순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정도로 경제에 있어서는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정치체제는 아직도 일당 독재 체제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도 사회주의 경제를 포기했다고 분명하게 선언하지 못하고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은폐하고 있다. 중국은 이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정의하지 못한 상태로 있는 한 가치관의 혼란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탈북자 문제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상당히 모호하고 유동적인 인상을 주는 이유는 중국의 가치관의 혼란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면 중국처럼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려 하지 않는다. 역으로 독재 이념을 확신하는 정권이라면 국제여론, 특히 미국의 태도에 중국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중국은 자신의 정체성의 모순에서 오는 가치관의 혼동때문에 탈북자 문제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의 양극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초라한 모습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월드컵 보도문제도 근본적으로는 중국 사회가 민주화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중국 축구팀이 잘못했는데 한국 팀이 잘하면 중국의 국가 위신에 문제가 되니까 한국 팀의 승리를 깎아내리는 것이 중국 언론의 의도였다면, 실제로는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위신을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만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도 중국이 일당 독재체제를 포기하지 못하는 한 중국 언론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지위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콤플렉스가 강한 나라다. 바로 중화사상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우선 중국은 아시아에서라도 리더십을 행사하는 국가가 되려면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분명히 하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세계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강대국들은 모두 뚜렷한 이념과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바로 그 이념과 세계관이 강대국의 단기적 이익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국가의 이익과도 일치한다는 확신을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보편성을 갖게 되고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중국이 해야 할 일은 '부국강병'을 위해서 경제성장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중국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역사적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올 가을에 예상되고 있는 중국 지도층의 교체가 단순히 사람만을 바꾸는 행사가 아니라 중국의 현대적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석좌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