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세 현역 피터 드러커 명쾌한 미래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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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세기 최후의 르네상스인''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오스트리아 출신의 석학 피터 드러커의 저서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단절의 시대』 『경제인의 종말』 『미래의 결단』 등 경제사회 부문만 14권이다.

여기에 비즈니스 위크지가 1999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21세기 지식경영』 등 경영부문이 17권이고, 소설과 미술평론집, 자서전 등을 합치면 36권에 이른다. 지난해 국내에서만도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 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 등 3권이 번역 출간됐으니 올해 93세의 드러커는 당당한 현역인 셈이다.

그가 펴낸 신간의 원제는 'Managing in Next Society'. 지난 3년여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 등에 기고했던 글을 묶은 것이다. 주제는 미래의 사회와 경제를 전망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경영지침을 제공하는 것.

따라서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유익한 독서기회를 제공한다. 사례를 통해 문제의 핵심을 전달하는 능력 때문이다.

책은 'Next Society',즉 다음 사회 분석에서 출발한다. 그 내용은 첫째, 노인층의 증가와 젊은 층의 감소가 급격히 진행될 것이며, 둘째, 지식이 미래의 핵심자원이 될 것이고 지식근로자가 가장 지배적인 노동력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기업운영과 관련해 1970년대 이래로 일어난 변화의 핵심을 요약한다. 첫째,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은 지식이고 그것은 지식근로자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쉽사리 휴대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둘째, 정규 사원이 아니라 시간제·임시직·컨설턴트·용역계약직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셋째, 한명의 경영자가 모든 업무를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은 불가능해졌다. 넷째, 오늘날의 고객은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를 갖고 있다. 따라서 권력은 고객에게로 이동하고 있다. 다섯째, 이제는 특정 산업에 고유한 기술이란 게 별로 없다. 핵심기술도 다른 분야에서 온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최고경영자의 역할은 오페라단 운영과 흡사해야 한다고 한다. 스타에 해당하는 주역급 가수들에게는 단장이 명령을 내릴 수 없다. 게다가 조연급, 오케스트라, 무대뒤에서 일하는 사람, 청중 등도 있다. 각 집단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러나 지휘자는 악보를 갖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같은 악보를 갖고 있다. 경영을 맡고 있는 CEO는 각각의 집단들이 결과를 생산하는 일에 집중하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식근로자들이 직장을 옮기지 못하도록 잡아두는 방법은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고 그는 역설한다. 이들을 동료 경영자로 대우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국내 독자의 입장에서 새롭게 눈에 띄는 내용은 관료주의에 관한 통찰이다.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그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첫째, 관료주의란 일본에 독특한 현상이 아니라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다. 둘째, 관료 엘리트들은 정책이 실패해도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셋째, 선진국 국민들도 웬만하면 엘리트들을 그대로 내버려둔다. 사회 안정에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넷째, 일본의 경험에 따르면 어떤 문제는 그냥 내버려 두면 저절로 해결된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정책입안자들은 사회에 미치는 충격을 먼저 고려하지, 경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연작전은 논리적인 전략이다.

예컨대 60년대 초 일본의 유통시스템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비효율적인 체계였다. 하지만 관료들은 개혁을 추진하지 않고 구멍가게를 내버려두었다. 왜? 실업자나 퇴직자를 구제할 사회적 안전망이었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거의 없는 농업도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농업인구의 대부분을 사회적 혼란없이 도시 노동력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지난달 일본에서 처음 출간됐을 때 사흘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명쾌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

번역이 충실한 것도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이다. 역자인 이재규(대구대 경영학과)교수는 이미 드러커의 책 여섯권을 번역하고 그의 평전까지 낸 대표적인 전문가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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