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파 "DJ, 內治 손떼라" 청와대 "초헌법적 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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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당과 청와대의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논란의 대상은 권력형 부패 청산과 DJ(김대중 대통령)와의 차별화다. 그 내용과 방식을 놓고 충돌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우선 노무현(武鉉)대통령후보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 그는 26일 시민단체와의 간담회에서 과거 청산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막다른 골목'이라면서 더 이상 청산 문제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이는 청와대에 대한 분명한 경고로 해석된다.

간담회 직후 후보의 유종필(鍾珌)공보특보는 "DJ와 차별화한다는 얘기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를 액면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쇄신연대 측도 적극 후보편을 들어 청와대를 몰아붙이고 있다. 쇄신파들의 입에서는 최근 아태재단 해체나 김홍일(金弘一)의원 탈당 요구뿐 아니라 'DJ의 내치(內治)중단' 주장까지 공공연히 나온다.

金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무장 해제' 요구다. 이들은 "DJ가 경제·국방·외교 문제에만 전념하고 정국 운영 등 내치 문제는 새로 짜이는 중립 성격의 국무총리와 각 정당 수뇌부가 협의해 운영토록 해야 한다"며 매우 구체적으로 자신들의 주문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민주당이 지나치게 압박하는 게 아니냐"며 서운해하는 모습이다. 한 고위 관계자는 "민주당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대목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청와대가 민주당에 밀려서 발표하는 형식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청산 프로그램을 상당폭 수용하겠지만 지금처럼 밀어붙여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청와대 조순용(趙淳容)정무수석은 이례적으로 이날 내치 중단 요구에 대해 "초헌법적이고 위헌적인 발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공식적으로는 그런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지만,사실이라면 이는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일정 부분 마비시키려는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이는 '비공식적'으로 청와대에 접수됐다는 추론도 가능한 발언이다.

청와대가 껄끄럽게 생각하는 또 하나의 대목은 신기남(辛基南)·천정배(千正培)의원 등 쇄신연대 측에서 제기하는 '청와대 비서실 책임론'이다.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최근 당 중도개혁포럼(회장 鄭均桓)의 모임에서 당 지도부와 후보의 선거 참패 책임론이 재거론된 배경을 박지원(朴智元)청와대 비서실장과 연결지었다.이 문제가 청와대와 민주당 갈등의 핵심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쇄신연대나 후보 측도 이 요구가 수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따라서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청와대 압박용이라는 얘기도 나온다.청와대가 당의 청산 프로그램을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인적 청산을 거론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 입장이 워낙 팽팽해 현재로선 절충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워낙 폭발력이 커 자칫하면 양측이 공멸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결국 타협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실제로 한화갑(韓和甲)대표가 물밑 조율에 적극 나서고 있기도 하다.

후보의 선택도 변수다.그의 정치력을 측량해 볼 수 있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이정민·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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