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오토바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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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원(1968~ ), 「오토바이」 전문

왕복 4차선 도로를 쭉 끌고
은색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오토바이의 바퀴가 닿은 길이 팽창한다
길을 삼킨 허공이 꿈틀거린다
오토바이는 새처럼 끊긴 길을 좋아하고
4차선 도로는 허공에서도 노란 중앙선을 꽉 붙들고 있다

오토바이에 끌려가는 도로의 끝으로 아파트가 줄줄이 따라온다
뽑혀져 나온 아파트의 뿌리는 너덜너덜한 녹슨 철근이다
썩을 줄 모르는 길과 뿌리에서는 잘 삭은 흙냄새가 나고
사방에서 몰려든 햇빛들은 물을 파먹는다
오토바이는 새처럼 뿌리의 벼랑인 허공을 좋아하고
아파트 창들은 허공에서도 벽에 간 금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



달리는 오토바이는 화면에 정지해 있고, 4차선 도로와 주변 풍경들만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그 속도에 의해 땅에 굳게 붙박여 있던 튼튼한 것들은 해체된다. 아파트는 제가 차지한 영역을 완강하게 고수하며 필사적으로 정지해 있으려고 하지만 속도에 의해 뿌리 뽑히며 끌려간다. 오토바이의 속도 속에서 보니 아파트는 모래사막이고, 그 사막은 '잘 삭은 흙냄새'와 '물'을 덮어서 만든 것이다.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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